「특위파란」…고지선점 "힘겨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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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 광주, 제5공 비리조사특위가 본격활동의 초입에서 또 뒤뚱거리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등 출국정지안을 야당이 단독표결 처리함으로써 발단된 특위운영을 둘러싼 진통의 뒤에는 본격조사활동이 시작될 경우「야대」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야당과 「소여」의 신세에서 미리부터 제동을 걸어두려는 여야의 초반고지확보 작전이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민정당은 5공 특위에서 증인 16명의 출국정지 요청안을 놓고 야3당이 「야대」의 실력을 발휘하고 나서자 특위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일방운영을 하지 않겠다는 담보가 없는 한 특위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즉각적인 반격을 가하고있다.
민정당의 이같은 대응은 어찌보면 조건 반사적 반응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광주특위 문동환 위원장의 「월권」을 이유로 들어 사임요구 등 정식문제화 △광주특위의 당사자인 정웅·정상용 두 의원 교체주장에 이어 △야당지도자에 대한 비리폭로 의사를 내비치는 등 일련의 움직임과 연결시켜 볼때 나름대로는 계산된 행동으로 읽혀진다.
특위에 임하는 민정당의 기본방침은 「정공법」이며 광주특위에선 군 작전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5공 특위에선 온갖 비리세로부터의 「누명」을 벗기겠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의 자료수집 등으로 이같은 방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민정당으로선 약세를 보일 이유가 없다고 호언할 정도다.
이같은 기조위에서 특위를 수세가 아닌 공세적 입장에서 운영하겠다는 기본전략이 수립된 듯 하며 아울러 초반전부터 판을 「밀리기식」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시작부터 야당측에 질질 끌려다니다간 결국 야당측의 정치공세에 휘말려 만회의 길도 없이 엄청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전술적 판단을 하고있다 하겠다.
아울러 야당측이 사실조사보다는 정치공세에 주목적이 있다는 저의폭로와 절차상 흠결이 보이는대로 부단히 공격함으로써 자칫 엉뚱한 여론재판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 야대의 힘 발휘를 최대한 저지하겠다는 전략도 세워놓고 있다.
이번 야당단독표결에 민정당이 회의불참 등 다소 고의 또는 유도성 행동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힘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여당으로서 결정적 순간에의 힘 발휘를 막아보겠다는 속셈이 작용한게 아니냐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기택 위원장의 사퇴요구와 사과하지 않으면 회의에 불참하겠다는 것은 다분히 엄포용인 것 같고 재발방지를 보장받기 위한 위협수단으로 동원된 것 같다. 당분간 특위에 불참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총무회담 같은 것을 요구하겠지만 특위자체를 거부한다든가 하는데까지 악화시킬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민정당은 올림픽전까지를 탐색기간으로 삼고 야당측의 공세강도 등을 지켜본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냉각기를 가지면서 야당측의 단독처리에 대한 하자를 어느 정도 부각시키고 나면 특위를 정상 가동시키고 올림픽휴전→재가동→야당비리 공개 등 전면전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5공 비리특위는 안팎사정으로 보아 공전기간을 좀 길게 잡고 그대신 광주특위는 예정대로 밀어갈 작정이다.
그러나 야당측이 김대중 총재와 최규하 전대통령의 동시증언을 요구하면서 또다시 표대결로 나올 경우 대응강도는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한데 김대중 총재가 갑자기최 전대통령을 물고 늘어진 것은 회의의 지연 등 다른 속셈이 있는게 아닌가고 진의파악에 부심하고 있다.
○…특위에 대처하는 야당의자세가 강경쪽으로 선회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광주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평민당과 5공 비리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의 경쟁심리가 작용한 감이 없지 않다.
특위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터져나온 윤길중 민정대표의 내각제 발언중 특히 「민주당 등과의 연정」운운은 그렇지 않아도 최근 평민당에 비해 다소 밀리는 듯한 감을 면치 못하고있는 민주당을 자극, 5공 비리특위의 출국금지 요청안 전격처리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다시 평민당의 최규하 전대통령의 증인채택은 표대결 불사방침을 촉발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의 강경입장을 평민·민주당간의 경쟁심리로만 파악하는 것은 지극히 단세포적인 해석인 것 같다.
야권은 「윤길중 파문」을 야권분열과 특위쟁점의 희석을 위한 「치밀히 계산된 파문」으로 거의 확신하다시피 하고 있다.
따라서 내각제 개헌과 연정문제로 놀리고 있는 국민관심을 특위정국으로 회귀시키고, 흐트러진 야권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눈에는 눈」식의 강경대처 방법이 효과적이라 판단한 듯 하다.
또 올림픽을 전후한 정치휴전을 앞두고 민정당이 띄워올린 「내각제 애드벌룬」의 바람을 빼고 대신 어차피 특위활동 전반의 최대쟁점이 될 핵심문제를 이 기회에 부각시켜놓자는 정치 공세적 성격도 내포됐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8월중 적어도 1, 2주간은 본격적인 조사활동을 전개해야 진상규명의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야권으로서는 민정당이 증인선정작업에서부터 축소지향적 또는 방어적 입장에서 역공을 취해오는데 대해 분명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처한게 사실이다.
때문에 민정당의 공세에 오히려 더 강경하게 대처할 필요가 생겼다고 볼수 있다.
이기택 5공 비리특위위원장이 『민정당이 특위활동에 협조하는 그룹이냐, 방해하는 그룹이냐 지켜봤으나 방해하는 그룹으로 결론지었다』고 단언하고 나선 것이나 이상수 평민당대변인이 『민정당의 협조없이 진상의 완전규명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더이상 대화나 타협이 안될때 국민여론을 업고 강력히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며 선을 그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보면 최 전대통령의 광주특위 출석문제는 물론 전두환 전대통령의 5공비리 및 광주특위 증인채택문제 역시3야당 연합에 의한 표대결로 처리하거나, 아니면 처리를 시도하는 또 한차례의 정치공세로 이어질 공산이 짙고, 조사활동자체도 효과와는 상관없이 야당단독에 의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될때 특위운영은 파란을 면할 수 없는데 이렇게되면 여야간 의견접근이 되어가고 있던 올림픽기간의 정치휴전 자체도 차질이 생길지 모른다.
그에 대한 책임이 어느쪽에 있느냐는 점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대국민 홍보전을 펴나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야권은 강경자세 선회가 국민여론을 타고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허남진·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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