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내란음모」판결문 민통련관련 부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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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씨는 72년10월11일 관절염치료를 구실로 도일체류중 반한·반정부 교포 및 미일 조야 용공인사들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국내 반정부세력을 육성·강화해 정부전복·정권쟁취의 목적으로 귀국을 포기, 72년11월10일부터 73년7월6일까지 동경외신구락부와 미워싱턴대학 등 미일각지에서 연설.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한 여론을 조성.
▲73년7월8일 배동호·김재화·곽동의·김종충으로부터 조총련 등에서 염출된 불순자금인 일화 1천7백40만엔을 제공받아 반국가 단체구성 자금에 충당키로 하고 같은해 7월13일 일본 동경 플라자호텔에서 배동호 등 베트콩과 6개 단체 대표와 한국민주회복 통일추진 국민회의를 결성키로 합의.
▲73년8월4일 동경 파레스호텔에서 배씨 등과 재회합, 한민통 발기대회를 8월13일에 개최하고 선언대회를 8월15일 히비야(일비곡)공회당에서 광복절 경축행사와 겸해 개최할 것을 합의.
▲한민통의 강령을 파쇼1인체제 분쇄, 민주헌정질서회복, 민족경제의 자주적 발전 도모, 비동맹 다원외교실시, 국위선양, 세계평화도모, 한반도중립화, 남북연방제에 의한 점진적 통일실현으로 확정하고 간부구성은 의장 김대중, 부의장 김재화·정재준·김용인, 상임고문 배동호 등으로 확정.
▲73년8월초 귀국한 후 8월14일 자가에서 김종충으로부터 국제전화를 통해 8월13일에 한민통을 결성했다는 보고를 받고 74년2월초 NTV 기자「나카무라」로부터 자신이 한민통의장에 추대된 사실을 통고받음으로써 반국가 단체인 한민통의 수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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