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검찰 여성 62% “성희롱·성범죄 피해 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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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및 산하기관과 검찰에 근무하는 여성 직원 10명 가운데 6명이 성폭력이나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권인숙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위원장이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간담회를 열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 및 산하기관과 검찰에 근무하는 여성 직원 10명 가운데 6명이 성폭력이나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권인숙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위원장이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간담회를 열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검찰에서 근무하는 여성 구성원들의 절반 이상이 조직 내 성희롱ㆍ성범죄 등을 경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마련되어 있는 고충처리 시스템도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성희롱ㆍ성범죄 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숙)는 17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대책위는 법무부 본부조직과 검찰청, 교도소ㆍ구치소, 출입국ㆍ외국인청 등 전국의 법무부 소속기관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 총 8194명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벌였다. 조사대상의 90%인 7407명이 설문에 응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61.6%가 성희롱, 성범죄 등 성적 침해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임용 기간이 3년 이하인 직원의 경우 성희롱이나 성범죄 피해를 보았다고 답한 비중이 42.5%에 달했다.

위원회는 피해 경험 비중이 높은 데도 공식적인 고충처리 절차는 ‘유명무실’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법무·검찰 내 259개 기관에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위원회가 열린 횟수는 고작 3회였다. 성희롱고충사건 처리 건수도 18건에 불과했다.

대책위가 소속기관을 순회하며 연 간담회에서 직원들은 현행 신고절차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신고 시 내부 결재라인을 따르는 보고체계가 복잡하고 담당자의 전문성이 결여됐다’ ‘신고해도 은폐되는 구조와 감찰에 대한 불신이 있다’, ‘제대로 처리가 된 전례가 없다’ 등으로 설명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달라질 것이 없어서(31.3%)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4.8%)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아서(22.5%) ▲남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18.2%) 순으로 응답됐다.

또 성희롱 등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법무부 본부 및 산하기관 응답자들은 63.2%가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답했고, 이런 응답 비율은 검찰(66.6%)에서 더 높았다. 대책위는 “현재의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내부 구성원들이 기존 시스템을 통한 성희롱·성범죄 사건 처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며 “고충사건 처리 절차와 담당기구 등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이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대책위는 소문의 유포 등 2차 피해 우려가 더욱 큰 조직 특성을 고려해 성희롱 및 성범죄에 따른 고충처리가 실효성 있게 처리될 수 있도록 내부 절차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라고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성희롱ㆍ성범죄 고충처리를 전담할 장관 직속 전문기구(성희롱 등 고충처리 담당관)를 설치해 처리 절차를 일원화하고, 각 기관의 성희롱 고충처리 담당자는 사건 접수 시 내부 결재절차를 거치지 않고 장관 직속기구에 바로 보고하게 하라고 주몬했다. 조직 보호논리에 따라 사건을 은폐하려는 상급자의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법무부 내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 고충사건 처리를 점검하도록 하고, 사건 관련자의 정보 접근을 철저히 제한하는 등 2차 피해 방지대책을 포함한 성희롱ㆍ성범죄 고충사건 처리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라고 당부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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