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검찰에서 근무하는 여성 구성원들의 절반 이상이 조직 내 성희롱ㆍ성범죄 등을 경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마련되어 있는 고충처리 시스템도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성희롱ㆍ성범죄 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숙)는 17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대책위는 법무부 본부조직과 검찰청, 교도소ㆍ구치소, 출입국ㆍ외국인청 등 전국의 법무부 소속기관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 총 8194명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벌였다. 조사대상의 90%인 7407명이 설문에 응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61.6%가 성희롱, 성범죄 등 성적 침해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임용 기간이 3년 이하인 직원의 경우 성희롱이나 성범죄 피해를 보았다고 답한 비중이 42.5%에 달했다.
위원회는 피해 경험 비중이 높은 데도 공식적인 고충처리 절차는 ‘유명무실’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법무·검찰 내 259개 기관에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위원회가 열린 횟수는 고작 3회였다. 성희롱고충사건 처리 건수도 18건에 불과했다.
대책위가 소속기관을 순회하며 연 간담회에서 직원들은 현행 신고절차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신고 시 내부 결재라인을 따르는 보고체계가 복잡하고 담당자의 전문성이 결여됐다’ ‘신고해도 은폐되는 구조와 감찰에 대한 불신이 있다’, ‘제대로 처리가 된 전례가 없다’ 등으로 설명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달라질 것이 없어서(31.3%)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4.8%)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아서(22.5%) ▲남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18.2%) 순으로 응답됐다.
또 성희롱 등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법무부 본부 및 산하기관 응답자들은 63.2%가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답했고, 이런 응답 비율은 검찰(66.6%)에서 더 높았다. 대책위는 “현재의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내부 구성원들이 기존 시스템을 통한 성희롱·성범죄 사건 처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며 “고충사건 처리 절차와 담당기구 등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이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대책위는 소문의 유포 등 2차 피해 우려가 더욱 큰 조직 특성을 고려해 성희롱 및 성범죄에 따른 고충처리가 실효성 있게 처리될 수 있도록 내부 절차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라고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성희롱ㆍ성범죄 고충처리를 전담할 장관 직속 전문기구(성희롱 등 고충처리 담당관)를 설치해 처리 절차를 일원화하고, 각 기관의 성희롱 고충처리 담당자는 사건 접수 시 내부 결재절차를 거치지 않고 장관 직속기구에 바로 보고하게 하라고 주몬했다. 조직 보호논리에 따라 사건을 은폐하려는 상급자의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법무부 내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 고충사건 처리를 점검하도록 하고, 사건 관련자의 정보 접근을 철저히 제한하는 등 2차 피해 방지대책을 포함한 성희롱ㆍ성범죄 고충사건 처리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라고 당부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