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자국민' 버리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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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끓는 모정
납북자 김영남씨의 어머니 최계월(82)씨가 12일 기자회견 중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승식 기자

1977년 북한에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와 그 가족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한 일본 정부의 집념 덕분에 요코타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란 사실이 밝혀졌다. 4년간에 걸친 끈질긴 추적의 산물이었다.

한국 기업의 한 도쿄 주재원은 "이번 일은 수십 년 지난 전사자의 유해 찾기에 온 정성을 다하는 미국과 같이 일본도 자국민 보호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파악한 일본인 납북자는 21명. 반면 관련 단체와 가족들이 주장하는 한국인 납북자는 약 50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의 열정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 일본 정부의 집념=도쿄의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북한 당국에 의해 현지에서 결혼한 요코타의 남편이 김영남씨란 사실을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유전자(DNA) 검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결과를 자신했다"고 말했다. 이는 치밀하고 꾸준하게 그러면서도 소리 없이 벌여온 정보수집 활동의 결론이었다. 다만 북한 당국이 인정할 만한 물적 증거가 부족했던 것을 이번 DNA 검사가 보완해 준 것이다.

일본이 요코타에 관한 정보를 처음 접한 것은 2002년 10월 다른 납북자의 증언에 의해서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해 9월 평양에서 열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70년대에 일본인 13명을 납치했다"고 시인했다. 그중 생존자 5명이 일본으로 귀국하자 외무성과 경찰이 대규모 조사를 벌였다. 이 가운데 한 명인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에게서 "10여 년간 요코타 부부와 알고 지냈는데 남편은 한국인이라고 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발표했다가 상대방에게 말려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앞서 만났던 요코타의 딸 김혜경의 진술도 의혹을 더해줬다. 김정일 위원장의 납치 시인 직후인 9월 30일 외무성 당국자들은 평양에서 김혜경을 만나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DNA 검사를 위한 혈액.머리카락 등 시료를 확보했다.

그 뒤 납치 문제에 관한 북.일 간 협의가 베이징(北京)에서 열렸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3차 실무협의는 2004년 11월 평양에서 열렸다. 회의 장소를 바꾼 것은 일본 당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서였다. 요코타 남편과의 면담을 반드시 성사시켜 진상을 확인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 김영남 신체정보 채취 '작전'도=일본은 이에 앞서 요코타의 남편일 가능성이 있는 한국인 납북자들의 사진을 미리 확보한 상태였다. 고교 시절 납치된 김영남씨 등 다섯 명의 사진이었다. 일본 대표단들은 평양으로 떠나기에 앞서 이 사진을 뇌리에 각인시켰다. 20년 이상 흐른 상태에서 같은 인물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차하면 사진을 들이밀어 본인에게 자백을 받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회담장에 들어간 정부 대표 중 한 사람에게는 "김철준의 눈매만 확인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남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신체정보 수집을 위한 '작전'도 준비했다. 조사단의 일원이던 경찰 간부는 김씨에게 표면이 특수처리된 사진을 건네며 만져보게 하거나 담배를 피우게 해 꽁초를 챙겨 나오려 했다. 하지만 지문 확보에는 실패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일본 정부는 올 초 마지막 확인 단계인 DNA 검사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나종일 주일 대사에게 직접 한국인 가족들의 시료 채취에 대한 협력을 요청할 정도로 비중을 뒀다. 요코타의 딸과 한국인 납북자들의 DNA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망신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일본 정부는 '북한에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요코타의 흔적을 추적하는 동시에 추가 납북 일본인들에 대한 조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이 97년 김영남씨의 납북 사실을 확인하고도 한국 정부는 10년 가까이 손놓고 있었다. 기껏 했다는 것이 한국인 납치 피해자 가족의 DNA를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에 와서 수집해 갈 수 있도록 용인한 정도였다.

일본 정부의 DNA 검사에 협력해 온 한국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한국 정부가 아닌 일본 정부에 유전자 시료를 맡기면서 마음은 편할 수 없었다"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납치 문제 해결에 집념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쿄=예영준.김현기 특파원<yyjun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 유전자(DNA) 검사 어떻게 했나=일본 정부는 2002년 9월 평양에서 요코타 메구미의 딸 김혜경을 면담할 때 얻어 온 혈액과 머리카락 몇 가닥을 단서로 4년에 걸쳐 검사를 했다. 아울러 김철준이라는 이름을 쓰는 메구미의 남편이 납북된 한국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2004년 그를 면담했으나 검사를 위한 시료는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 한국인 납북자 다섯 명의 부모로부터 혈액과 체세포를 채취,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조부모와 손자 관계를 확인했다. 그 결과 김혜경의 아버지가 1978년 전북 군산 선유도에서 실종된 김영남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나가와 치과대학과 오사카 의과대학이 이번에 실시한 검사의 신뢰도는 각각 99.5%와 97.5%였다. 조손 관계가 맞을 확률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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