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 명에 학생 하나 “섬 전체가 교실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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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벌교 장도분교의 교사 김성현씨(왼쪽)와 학생 김이건군이 바닷가에서 수업하고 있다. [사진 김성현]

벌교 장도분교의 교사 김성현씨(왼쪽)와 학생 김이건군이 바닷가에서 수업하고 있다. [사진 김성현]

녹차로 유명한 전남 보성에는 특별한 섬 하나가 있다. 장도(獐島)다. 벌교읍 장암리에서 남동쪽 3.8㎞ 해상에 위치한 면적 2.92㎢의 작은 섬이다. 하늘에서 보면 노루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장도에는 주민 300명이 산다. 대다수가 70대 이상 고령이다. 이 섬의 유일한 학교는 벌교초 장도분교장이다. 전교생은 단 한 명이다. 현재 6학년인 김이건(12)군이다.

보성장도분교 김성현 교사·김이건군

장도분교의 선생님 역시 한 명이다. 지난해 3월 부임한 8년차 경력의 김성현(34) 교사다. 학생 한 명에 교사 한 명인 섬마을 학교의 모습은 도심과는 사뭇 다르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김군의 학교 수업은 오전 9시 시작된다. 수업은 당연히 1대1로 진행된다. ‘40분 수업 후 10분 휴식’이라는 규칙은 때때로 유연하게 적용된다. 볕이 좋은 날엔 공기 좋은 학교 주변에서 예정에 없던 야외수업을 한다.

점심이 가까워지면 때때로 교내 식당으로 옮겨 수업을 한다. 김 교사가 직접 점심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학교 규모가 작아 영양사·조리사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교내와 섬 곳곳은 학습 공간이다. 학교에서 텃밭도 가꿨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땀을 흘리며 키운 오이와 당근은 점심 식재료가 된다. 참외와 토마토는 달콤한 디저트다. 닭 두 마리가 낳은 계란으로 ‘계란후라이’를 만든다. 학교 주변 갯벌 역시 놀이터다.

선생님과 학생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매주 수요일 배를 타고 특별한 외출을 한다. 본교인 벌교초에서 열리는 공동 학습을 위해서다. 배와 차를 갈아타면 왕복 2시간가량 걸린다. 장도항과 벌교 상진항을 오가는 배는 오전과 오후 각 한 차례만 운행된다. 육지에 나왔다가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못하면 김 교사의 집인 고흥에서 사제가 함께 잔다.

김 교사는 “아내가 7세, 4세인 두 아들을 데리고 장도에 오기도 한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두 아들과 이건이가 친형제처럼 어울려 논다”고 했다.

김군이 처음부터 혼자 학교에 다닌 건 아니었다. 4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교 친구가 있었다. 장도보건진료소장의 자녀였다. 그러나 진료소장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자 친구가 전학갔고, 5학년 때인 지난해 유일한 전교생이 됐다. 이 무렵 부임한 김 교사와 더욱 가까워졌다.

장도분교는 1945년 5월 장도간이학교로 문을 열었다. 이듬해 장도국민학교로 승격했지만, 학생 수 감소에 따라 99년 9월 벌교초교 장도분교로 격하됐다. 해마다 전교생이 두세 명에 불과하더니 올해 한 명이 됐다. 김군이 마지막 졸업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장도에는 한 달 전 태어난 신생아가 있다. 그러나 향후 몇 년간 학교에 다닐만한 연령대의 아이는 없다. 김 교사는 “내년 초 이건이가 졸업을 하면 당장 폐교는 아니더라도 휴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성=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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