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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게 죽였다는 사실을 제가 입증해야 하나요”…동물보호법 허점이 남긴 상처

중앙일보

입력

이웃집 리트리버 반려견을 강제로 끌고 가 탕제원에 넘긴 뒤 개소주를 만든 50대 남성이 지난 8일 부산지법 서부지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가운데, 피해자(견주 최문희씨)의 변호를 맡은 서국화 카라(KARA‧동물보호단체) 변호사는 “솜방망이 선고가 나온 데에는 동물보호법의 허점이 한몫했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법 '잔인한' 방식만 처벌 #입증 책임 피해자에게 있어 부담 #동물보호법 위반 솜방망이 처벌 대부분

오선이를 죽인 김모(50대·남)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동물보호법 위반과 점유이탈횡령 두 가지였다. 동물보호법 8조 1항(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이 아닌 8조 3항(유기 동물을 죽이는 행위)이 적용됐다. 오선이를 ‘유기 동물’로 규정지었기 때문에, ‘소유자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절도죄는 적용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동물보호법 8조 1항을 선택하지 못한 것일까.

견주 최문희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리트리버 오선이의 모습. 오선이는 지난해 9월 부산에서 한 50대 남성에게 납치돼 탕제원으로 넘겨져 도살당했다. [사진 카라]

견주 최문희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리트리버 오선이의 모습. 오선이는 지난해 9월 부산에서 한 50대 남성에게 납치돼 탕제원으로 넘겨져 도살당했다. [사진 카라]

동물보호법 8조 1항은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잔인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법적 합의가 없다는 사실이다. 목을 매다는 것은 ‘잔인한 방법’으로 인정되는 반면, 개도살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전살법(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로 개를 감전시켜 죽이는 방식)은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

오선이는 김모씨에 의해 납치된 후 탕제원으로 넘겨졌다. 김씨나 탕제원 주인에게 동물보호법 8조 1항을 적용해 기소하기 위해서는 오선이가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입증의 책임 피해자 측에 있다. 서 변호사는 “잔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은 반려견을 잃은 견주에게는 큰 심리적 부담이자 2차 피해”라며 “방식을 막론하고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가축 도살과 같은 경우를 예외로 하도록 동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선이가 도살당한 부산의 한 탕제원 모습. [사진 카라]

오선이가 도살당한 부산의 한 탕제원 모습. [사진 카라]

동물보호법의 최대 형량(2년)이 절도죄(6년)나 재물손괴죄(3년) 보다 낮기 때문에, 동물 학대 피의자에게 동물보호법만을 단독으로 적용해 기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재물손괴죄나 절도죄를 추가로 적용하는 데에는 딜레마가 따른다. 서 변호사는 “재물손괴죄를 적용하면 ‘동물은 물건’임을 인정하는 꼴이고, 재물손괴죄 적용하지 않으면 (동물보호법 위반만으로 실형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처벌을 포기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채수지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이 정하는 학대유형과 처벌대상이 지나치게 좁고, 처벌정도가 너무 약하며, 하위법령이 위임의 취지에 반하여 모법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행법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는 ‘물건’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금껏 동물보호법 위반만으로 실형이 선고된 예는 없다. 대부분이 집행유예나 수십만원의 벌금형에 그친다. 2015년 전남 장성에서 개를 차에 매달아 2km가량을 주행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6개월 실형이 선고됐으나 이는 김씨가 무면허 상태로 차를 몰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가 동시에 적용된 결과였다. 2011년 부산에서 이웃집 진돗개가 짖는다는 이유로 도끼로 개의 머리를 쳐 죽인 50대 남성은 동물보호법 위반뿐 아닌 특수손괴죄와 특수주거침입죄를 적용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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