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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컵에 중독된 사회…보증금 얼마면 안 쓰시겠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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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커피가 일회용컵(왼쪽)과 유리컵에 각각 담겨 있다. 김경록 기자.

아이스 커피가 일회용컵(왼쪽)과 유리컵에 각각 담겨 있다. 김경록 기자.

“매장에서 드시면 머그잔에 드릴까요?” “됐어요. 그냥 (일회용컵에) 주세요.”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층의 스타벅스.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매장 안이 북적거렸다.
매장에는 수십 개의 머그잔이 따뜻하게 보관돼 있었지만 정작 이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텀블러(다회용컵)를 가져오면 300원을 할인해주겠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는데도 텀블러를 들고오는 손님들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면, 분리수거통에는 손님들이 버리고 간 일회용컵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스타벅스 매장 직원이 커피를 담기 위해 머그잔을 꺼내고 있다. 김경록 기자.

스타벅스 매장 직원이 커피를 담기 위해 머그잔을 꺼내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경재 점장은 “플라스틱 컵은 온도 유지 기능이 없어서 얼음이 금방 녹아 커피 맛이 연해지는데도 손님들은 편리한 일회용컵을 더 선호한다”며 “보통 10명 중 한 명 정도만 다회용컵이나 머그잔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연한 듯 일회용컵 주는 커피전문점 

서울 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점원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뉴스1]

서울 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점원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뉴스1]

다른 커피전문점은 어떨까.
기자가 서울시내 주요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 5곳을 돌아본 결과, 머그잔 사용 여부를 물어본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모두가 당연한 듯이 일회용컵에 음료를 담아줬다. 머그잔에 음료를 담아달라고 하자, 준비된 머그잔이 없다면서 당황해하는 곳도 있었다.
프렌차이즈 별로 수십 개에 이르는 다양한 음료 메뉴를 개발했지만, 이를 담는 컵은 일회용 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한 커피전문점 직원은 “머그잔은 비위생적이고 불편하다는 인식 때문에 싫어하는 손님들이 많고, 우리도 점심시간 같이 바쁠 때는 일회용컵을 쓰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공짜에 편리한 일회용컵, 소비↑

서울 명동 거리에 설치된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일회용컵이 버려져 있다. 천권필 기자.

서울 명동 거리에 설치된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일회용컵이 버려져 있다. 천권필 기자.

일회용컵 소비는 2008년 컵보증금 제도가 사라지면서 급속도로 늘었다.

컵보증금 제도는 사용한 일회용컵을 반납하면 일정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로, 2002년에 도입됐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에 폐지됐다. 소비자가 불편해하고, 회수율도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일회용컵의 소비량은 2009년 191억개에서 2015년엔 257억개로 급증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2000년대 들어 일회용컵으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문화가 확산했지만,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규제를 풀면서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그 결과 일회용컵을 쓰는 게 당연시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일회용컵 10%도 재활용 안 돼”

스타벅스 매장에 손님들이 버리고 간 일회용컵이 세척 후 보관돼 있다. 김경록 기자.

스타벅스 매장에 손님들이 버리고 간 일회용컵이 세척 후 보관돼 있다. 김경록 기자.

문제는 일회용컵이 다른 쓰레기보다 재활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매장에 버리는 일회용컵은 세척과 선별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그나마 재활용 처리가 가능하다. 스타벅스의 경우, 매장에 버린 일회용컵을 세척해 모아뒀다가 일주일에 두 번씩 수거 업체가 회수해서 재활용 가공 업체로 보낸다. 이를 통해 페트(PET) 재질인 플라스틱 컵은 재생섬유로 재활용된다.

지하철 역사 내 쓰레기통에 일회용컵이 세척되지 않은 채로 버려져 있다. 천권필 기자.

지하철 역사 내 쓰레기통에 일회용컵이 세척되지 않은 채로 버려져 있다. 천권필 기자.

하지만, 밖에서 버려지는 일회용컵은 재질이 제각각인데다가 세척도 안 돼 있어서 대부분 재활용되지 못하고 소각 처리된다.

일회용컵을 전문적으로 수거하는 대원리사이클링 이만재 회장은 “같은 플라스틱 컵이라도 업체 별로 재질이 다르고, 종이컵도 물에 녹지 않도록 코팅 처리가 돼있기 때문에 별도로 선별하지 않으면 재활용을 할 수 없다”며 “밖에 버리는 일회용컵 중에서 재활용이 되는 건 10%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만에 부활하는 컵보증금 제도 

2008년 폐지된 컵보증금 제도가 다시 시행된다. [중앙포토]

2008년 폐지된 컵보증금 제도가 다시 시행된다. [중앙포토]

환경부는 일회용컵 사용이 논란이 되자 컵보증금 제도를 10년 만에 부활시키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15년 61억 개에 달했던 커피전문점의 일회용 컵 사용량을 2022년까지 40억 개로 줄이고, 재활용률은 8%에서 5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과거 50~100원 수준이었던 보증금도 더 오를 전망이다. 직장인 최 모 씨는 “만약 500원 이상을 보증금으로 내야 한다면 불편하더라도 텀블러를 들고 다닐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보증금 액수는 사회적 여론 수렴을 거쳐서 결정할 것”이라며 “하반기에 일부 매장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운영해 본 뒤에 법 개정과 시스템 구축을 거쳐 내년부터는 본격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공짜에다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일회용컵 사용에 익숙해진 문화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회용컵으로 커피를 즐기는 게 왜곡된 문화라는 걸 알리는 동시에, 회수율을 높일 수 있도록 회수 시스템을 철저하게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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