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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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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초의 즉석 라면은 1958년 8월 25일 태어났다. 출생지는 일본, 이름은 치킨라면, 아버지는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닛신식품 회장이다. 전직 금융인(신용조합 이사장)인 안도 회장이 라면을 만들기로 결심한 건 한 포장마차에서. 전후 일본엔 굶는 사람이 많았다. 국수 몇 가닥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을 보며 "배곯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남아돌았다.

그러나 일본인은 빵에 익숙지 않았다. 그는 남아도는 밀가루에 착안했다. 빵 대신 국수를 만들되, 싸고 맛있고 오래가는 '작품'이 목표였다. 1년여의 실패 끝에 막 포기하려던 즈음, 아내가 튀김을 만드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밀가루를 튀기면 수분이 증발해 오래 보전할 수 있다. 맛도 좋고 값도 싸다.' 그가 '순간 유열건조법'이라 이름 붙인 라면 제조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최초의 한국 라면은 63년 9월 15일 태어났다. 출생지는 서울, 이름은 삼양라면, 만든 이는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이다. 전직 금융인(제일생명 사장)인 전 회장이 라면을 만들기로 결심한 건 61년 어느 날 남대문 시장에서. 한국전쟁 후 한국엔 굶는 사람이 많았다. '꿀꿀이죽'을 사려고 줄 서 있는 이들을 보며 "배고픈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유엔의 원조로 밀가루가 남아돌았다.

전 회장은 회사를 접고 라면 개발에 몰두했다. 일본 묘조식품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과 인연이 닿은 건 63년 봄.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로 재기했다.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도와주겠다." 오쿠이 사장은 공짜로 기술을 건네줬다. 일본이 기술을 무상 제공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인의 입맛과 식생활을 바꾼 라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닮은꼴로 시작한 한국과 일본의 원조(元祖) 라면, 지금은 어떨까. 안도 회장은 올해 96세, 전 회장 역시 87세의 노익장이다. 닮은 건 여기까지다. 닛신식품은 현재 매출 2472억 엔(약 2조원)으로 일본 1위다. 반면 삼양식품은 89년 '괘씸죄'에 걸려 쇠기름 파동의 희생양이 됐다. 지난해 9월엔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당시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달려든 게 닛신식품이었다. 교원공제회가 인수해 불발로 끝났지만, 한국 원조가 일본 원조에 팔릴 뻔한 것이다.

11일 서울에서 세계라면총회가 열렸다. 대부분 각 나라 1위 업체가 참석했다. 안도 회장은 참석했지만, 전 회장 자리는 없었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