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트럼프 쇼 … “김정은, 현실세계로 북한 이끌려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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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워싱턴DC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북한에서 석방된 한국계 미국인 3명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백악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왼쪽 셋째)과 세라 샌더스 대변인(왼쪽 첫째)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워싱턴DC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북한에서 석방된 한국계 미국인 3명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백악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왼쪽 셋째)과 세라 샌더스 대변인(왼쪽 첫째)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새벽 3시의 잘 짜인 ‘트럼프 쇼’였다.  트럼프 스스로 “매우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아마도 새벽 3시 TV 시청률로는 역대 최고 기록을 깼을 걸”이라 자신했을 정도다. 주인공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출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조연은 억류됐다 풀려난 3명의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북한서 돌아온 3명 기내 마중

새벽 2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내외가, 그리고 2시20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차례로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짙은 색 정장에 줄무늬 넥타이를, 멜라니아 여사는 검정 상의에 회색 정장을 각각 착용해 북한에서 고초를 겪고 돌아온 자국 시민들에 대한 예우를 보였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백악관 간부들도 총출동했다.

쌀쌀해진 새벽 날씨. 관객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200여 명의 기자들이었다. 대통령·부통령이 동시에 참석하는 외부 행사라 그런지 기자들은 3시간 동안 펜스로 둘러싸인 공간에 갇혀 꼼짝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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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3명을 데리러 갔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탑승한 국무부 전용기가 도착하고, 이어 억류됐던 3명을 태운 별도의 미 전용기가 도착하면서 활주로 부근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미국인 3명을 태운 전용기는 폼페이오가 내린 비행기와는 달리 기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멜라니아·펜스 부부 등 총출동

그러곤 소방차 2대의 사다리를 연결해 게양한 가로세로 10m의 대형 성조기 바로 앞에 정확히 멈춰 섰다. 이들 모습과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성조기가 정확히 한 앵글에 잡히게끔 방송사 카메라의 각도를 교묘하게 감안한 시나리오였다.

트럼프 대통령 내외는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김학송·김상덕씨를 맞이하기 위해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정확히 새벽 3시. 트럼프는 약 5분 후에 이들의 손을 붙잡고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억류됐던 이들 3명은 다소 수척해 보이기는 했지만, 오랜 억류 생활에도 걷고 움직이는 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감격에 벅찬 듯 두 팔을 한껏 들어올렸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이기도 했다. 옆에 있던 트럼프는 계속 박수를 쳤다. 덩달아 활주로 부근에 모여 있던 볼턴 보좌관,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등이 박수에 가세했다. 일부는 환호를 질렀다.

이때부턴 트럼프의 독무대였다. 트럼프는 3명의 미국인과 함께 나란히 기자들이 서 있는 곳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세 명의 위대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밤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곤 “이 정도까지 온 적이 없었다. (북한과) 지금과 같은 관계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며 미국인 3명의 석방이 자신의 공임을 드러내놓고 강조했다.

“석방 빨리 해준 김정은에게 감사” 

그러면서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우리가 전 한반도를 비핵화할 때가 될 것” “진정한 영광은 우리가 핵무기를 제거해 성공을 거두는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자신의 손으로 이뤄 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당초 (북·미 정상) 회담 때 이 멋진 3명을 건네받을 줄 알았는데, 회담을 하기 전에 돌려준 것은 매우 나이스했다. 예정보다 앞섰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김정은)가 그의 나라를 현실세계(the real world)로 이끌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한국계 미국인 3명은 트럼프의 말을 옆에서 들으며 통역으로부터 그 의미를 전달받았다. 영어에는 다소 익숙지 않아 보였다. 폼페이오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트럼프의 말을 듣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날 공항 행사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이었다. 첫째는 만 71세의 미 대통령이 스스로 공항에 나와 억류 미국인을 직접 맞이했다는 점. 워싱턴포스트는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대통령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둘째, 행사 때마다 취재진의 입장을 막고 기회를 제한하던 백악관이 이날 따라 모든 언론에 취재 문호를 개방했다는 점이다.

취재 개방 … “시청률 기록 깼겠지” 

일본 TBS의 한 기자는 “평소에 그렇게 취재 허가를 안 내주더니 이번에는 워싱턴 지국의 8명이 신청을 했는데, 전원에게 취재 허가가 내려졌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날 행사를 자신의 업적으로 선전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CNN의 백악관 출입기자 제프 제레니는 “솔직히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 여부는 모르겠지만 미국 대통령이 억류된 미국인을 이렇게 데려왔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앤드루스 공군기지=김현기 특파원,
서울=조진형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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