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에 대한 경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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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년1개월만에 내려진 문귀동 피고인에 대한 재판결과는 값진 교훈과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 경찰과 검찰, 법원 모두에 뼈아픈 자생의 계기가 되고 공권력에 일대 경종을 울려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는 한 연약한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무릅쓰고 대항한 공권력과 인권과의 대결에서 인권이 승리했다는 점도 이번 재판의 중요한 의미다. 또 한가지는 문피고인이 그렇게도 완강히 부인했던 「성고문」을 재판부가 확인했고, 제자리에선 사법부의 모습을 볼 수 있게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함께 제5공화국의 인권유린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경찰이 특정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 공권력을 악용하고 국민의기본적 인권을 멋대로 짓밟은 수치스런 사건이었다. 그것을 권양이 성적폭행을 폭로함으로써 장차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감히 공권력과 맞선데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실제적 진실을 밝혀 한 점의 의혹도 안 남기겠다던 검찰은 처음엔 사실규명에 충실한 듯 하다가 하루아침에 태도를 변경, 오히려 권양을 몹쓸 여자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성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했다느니』, 『문경장이 가슴을 서너번 쳤다』는 식으로 허위발표를 했었다.
그 과정에서 「관계기관대책회의」가 등장했고 재정신청을 접수한 사법부도 2년 가까이 사건을 묵혀두기도 했다.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 그것도 대법원이 1년여 동안 잠자코 있다가 제5공화국 막판에 가서야 신청을 받아들이는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재판결과가 경찰과 검찰, 법원 모두가 자생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법치를 근간으로 하고 권력의 횡포와 오·남용을 방지하는 여러 장치들을 갖추어 놓고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보듯이 모든 제도와 기관이 제구실을 하지 않고 맡은바 책무를 포기했을 때 법과제도는 형해화하고 만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정권의 시녀노릇을 한 경찰은 접어두고서라도 형사소추권을 독점한 검찰이 기소편의주의를 남용, 진실이 왜곡되는 사실도 볼 수 있었다. 또 검찰이 소추권을 악용했을 경우 마지막 권리구제수단인 재정신청제도 역시 사법부가 제몫을 안하면 법전속의 장식조항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것도 경험했다.
이렇듯 성고문 사건의 전후과정은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이를 운용하는 사람의 소임도 이에 못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였다. 또한 밀실수사를 비롯한 경찰의 수사제도, 검찰의 기소편의주의, 법원의 재정신청제도 등의 문제점과 미비점이 어디에 있는 가도 알게되었다.
따라서 권양사건은 문피고인의 유죄판결로 만족하고 종결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고 실현시키는 제도와 장치들을 개선하고 아직도 안개 속에 가려진 진상도 끝내는 밝혀야 하리라 믿는다. 검찰의 석연치 않은 결정번복 과정과 관계기관대책회의의 정체는 기대했던 재판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앞으로 당국이 스스로 밝힐 수 없다면 국회특조위를 통해서라도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또 다른 공권력의 폭력과 권양 사건의 재판을 막고 법과공권의 정의와 도덕성을 회복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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