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보필 잘 못했다" 현대차 보좌진 자성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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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현대차 수사가 그룹 중심부로 이동하면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10일 새벽 서울 양재동 본사에 출근해 대책회의를 했다. 비가 내린 이날 오전 현대차 직원들이 양재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현대.기아차그룹 내부에서 '보좌진 자성론'이 일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의 대응 부족은 물론 정몽구 회장의 미국 출국과 귀국 등으로 인한 도피 의혹 등 일련의 과정에서 여론의 향배가 좋지 않은 데 따른 반성이다. 회장은 그룹의 얼굴인데, 회사에 대한 임직원의 충성심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검찰의 내사가 수 개월 동안 진행되면서 압수수색까지 이어졌지만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허술한 정보관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환율 급등에 대비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올해 초 1조3000억원의 납품단가 인하를 단행했지만, 이런 조치가 뜻하지 않은 여론의 역풍을 받은 것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자성=정 회장은 미국에 체류하면서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글로벌 경영에 힘썼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하면서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8일 오전 귀국한 정 회장은 인천공항에서 승용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당시 정 회장은 입국장에서 승용차까지 가는 2분여 동안 회사 직원 300여 명이 스크럼을 짜서 만든 오솔길 같은 통로로 지나가야 했다. 이 사이 100여 명의 취재진과 직원들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길을) 벌려, 벌려""자리 지켜" 등 고함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정 회장을 수행하던 임원이 인파에 떠밀려 넘어지기도 했다. 정 회장은 "에잇, 이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같은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 같은 북새통을 겪으면서 임직원에 대한 정 회장의 불만이 컸던 것도 자성론이 나온 이유 중 하나다. 정 회장이 출국을 하도록 조언한 보좌진의 판단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고 누누이 밝혔건만, 도피성 의혹을 벗지 못했다"며 "어떻게 하든 말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검찰의 압박에 못 이겨 귀국한 꼴이 됐다"며 "갑작스러운 출국 때문에 사태가 더 꼬였다"고 덧붙였다. 당시 일부 경영진은 출국 반대 의견을 냈지만 자문 법률 회사가 "법적으로 출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조언하자 정 회장이 이를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수사 상황이 연일 국민에게 알려지는 상황에서 '도피성 출국'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것이 뻔한 상황인데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한 퇴직 임원은 "정 회장이 결정한 사안에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려운 그룹 분위기상 적절하게 조언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 회장에게 '자리를 걸고' 바른 소리를 할 임원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 철저한 검찰 소환 대비=현대차는 임박한 정 회장과 정의선 사장 검찰 소환에 대비한 전략을 짜고 있다. 현대차 경영진은 그동안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며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과거 검찰 수사를 받은 기업들의 사례를 연구하고, 출두 과정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대비하고 있다. 특히 여론 동향에 신경 쓰면서 앞으로의 사태를 반전시킬 계기를 찾고 있다. 특히 더 이상 내부 제보자가 생겨선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퇴직 임원에 대한 배려 방안 등을 강구하고 있다. 내부 제보로 기업 금고와 비자금 장부가 검찰 손에 넘어간 것은 임원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고, 총수에 대한 여론 추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태진.김승현 기자<tjki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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