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창욱특파원】테헤란시가 염전의 정적뿐|짓다만 빌딩뼈대 앙상…곳곳 감시눈길|전쟁에 찌든 가슴 묘지서 오열로 달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3일새벽4시 메라바드공항에 도착, 3시간에 걸친 까다로운 입국수속을 끝내고 간신히 나선 테헤란 시가는 여느 나라의 아침처럼 조용했다.
호텔도 정장한 벨보이등 전쟁의 흔적을 첫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다.
공원에도 저녁이면 엄청난 인파가 몰려 오후 7시부터 자정넘게까지 때아닌 교통혼잡이 매일 일어난다.
도심차량도 홍수를 이루고 꽃가게가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성업하고 있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만난 어떤 이란인도 전쟁을 하는 나라답지 않게 여유있고 차분하다.
그러나 한 사람씩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 이란인 거의 모두가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8년간에 걸친 지루한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고 생필품이 모자라 오히려 『혁명전 「팔레비」시절이 그립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란인도 있다.
전잰중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거리 곳곳에 손때묻고 닳아 하얗게 반짝이는 낡은 총을 어깨에 메거나 두 손에 받쳐든 군인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행인이나 외국인들을 관찰하는 모습이다.
또 부유층이 많이 모여사는 북부 테헤란에는 20여층의 높은 아파트나 빌eld, 그리고 대규모 고급주택이 지난 8년동안 공사가 중단돼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거나 슈퍼마킷의 물품은 수량도 적고 종류도 적어 이나라의 고통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호텔 등에 마련된 서점에도 이란 안내 지도나 관광안내 서적은 모두 혁명전에 발간된 「고서」에 속하는 것들뿐이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한 이란인은 『전쟁때문에 국민 경제가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혁명으로인해 우리나라가 지난3백년 이래 최악의 상황에있다』고 불평했다.
이 이란인은 『혁명이 「팔레비」치하의 국민을 해방하기보다 이슬람 명분으로 국민을 더욱 속박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테헤란주재 한국상사원들이 전하는 이란 전쟁은 평온한 겉모습의 테헤란이 감추고있는 다른 전쟁공포를 실감케한다.
지난3월에 시작된 이라크의 대테헤란미사일 공격은 「3분후의 생명」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한달 이상 걸쳐 1백57발이 테헤란에 떨어진 이라크미사일 공격은 공습사이렌이 울린지 3분 후 하늘에 자그맣고 새까만 물체가 떴다가 굉음을 울리며 폭발한다. 어느 곳에 떨어질지 모르는 이 미사일 때문에 3분후라야 자신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곳 사람들의 설명이다.
테헤란 시내 곳곳에는 이때 파괴된 건물들의 모습이 전쟁의 비극을 증명하고 있다.
전쟁 외에도 국민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2천년의 이슬람 전통이 몸에 밴 이나라 사람에게도 엄격히 적용되는 회교율법이다.
「팔레비」왕이 살던 니아바란궁 부근 한 벽에는 커다랗게 파르스어 (이란어) 로 이렇게 쐬어져 있다.
「차도르를 쓰지 않은 여자에게 죽음을」
「팔레비」시절 차도르의 속박에서 일순 벗어날수 있었던 이란 여성들은 다시 강제되는 차도르 시대에 적응하지 않을수 없게 됐다.
니아바란궁으로 가는 택시에서 거리를 걷고있는 한 회교성직자 (믈라) 를 지나치자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갑자기 내뱉았다.
『바보같은 믈라 녀석들.』 그는 혁명후 믈라들이 좋은집에서 호의호식하며 고급차는 그들만이 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99.7%가 회교도인 이란은 이슬람혁명후 오히려 반종교인이 됐다』고까지 말했다.
이란인들의 전쟁 혐오증은 이젠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비판 또는 비난으로 이어지고있다.
최근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란에 돌풍과 소나기가 내리자 「이라크 전선에서 숨진 젊은 영렴들의 눈물」이라는 말이 일시에 퍼졌다.
한 젊은 이란인은 『혁명전의 이란국민들도 저녁에 공원을 찾아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즐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오후7시에 저녁식사를 하고 시원한 공동묘지로 가 통곡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집회나 종교집회등 공개적인 장소에서 나타나는 이란국민들의 구호는 선동적이고 격정적이지만 8년간의 전쟁으로 찌들대로 찌든 가슴, 전쟁에 대한 싫증을 혼자만의 오열로 달래고 있다는 얘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