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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금지법 효과 없고 여성 협박하는 데 악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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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11면

이한본 변호사는 낙태는 형벌이 아닌 사회적 규제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경빈 기자]

이한본 변호사는 낙태는 형벌이 아닌 사회적 규제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경빈 기자]

이한본 변호사(법무법인 정도)는 법조계에선 가장 극렬하게 ‘낙태죄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남성 변호사다. 그가 낙태죄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를 고발한 사건을 계기로 여성단체에서 구성한 낙태 태스크포스(TF)에 합류하면서부터다. 그는 처음부터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 규제를 없애는 전면 비범죄화만이 해답”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여성계에서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많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 그는 그만큼 국내에선 낙태죄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진보적인 인물로 꼽힌다.

8년째 법 폐지 운동 이한본 변호사 #법보다 사회적 규제 장치 필요 #원하지 않는 임신 없도록 하고 #그냥 낳아도 되는 환경 조성을

8년 전만 해도 낙태죄에 문제 있다고 해도 폐지까지 주장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범죄는 법을 어기면 실질적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낙태죄는 예외적이고 선별적으로 처벌한다. 대부분이 파트너의 고발로 적발된다. 여성만 처벌하기 때문에 남성이 헤어지면서 보복을 하거나 여성을 통제하고 협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국가의 형벌권이 이런 보복에 활용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가. 또 낙태를 하는 여성들은 처벌받는다는 사실과 불법 시술로 인한 위험을 알면서도 감행한다. 형벌로 규제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험에 노출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점에서 국가가 우선해야 할 일은 여성 건강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낙태죄 폐지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나.
“국회 입법운동을 벌이며 민변 인권보고서에 거의 매년 낙태문제를 올리고 있다. 국회에서도 2011년과 2017년 개혁입법과제에 낙태문제가 채택되기도 했지만 움직임은 없다. 국회의원들도 낙태죄 폐지보다는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무마하려는 태도가 강하다.”
낙태법 폐지

낙태법 폐지

낙태죄 폐지에는 이견이 많다. 국회의원들이 소극적인 것도 사회적 분위기를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 국회의원이나 진보적 여성계 인사들 중에서도 낙태죄 폐지는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사회적 분위기라는 게 누구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여성운동에 젊은층이 수혈되지 않아 젊은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인터넷 페미니즘이 부상하고, 요즘 여성 관련 이슈들을 넷페미니즘 운동이 선도하면서 낙태죄 폐지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기존 여성계도 모르는 사이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만 23만 명이 할 정도로 넷페미니즘의 견해가 압도하면서 요즘 여성단체들도 낙태죄 폐지 쪽으로 힘을 얻게 되었다.”
종교계의 생명권 존중 의견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문제다.
“종교계의 반대논리도 이해한다. 낙태죄 폐지가 모든 낙태를 무조건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낙태했다고 형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낙태는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형벌 규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힘을 합쳐 사회적 규제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원치 않는 임신에 이르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원치 않는 임신을 했더라도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각종 사회복지 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여성 임신·출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전환 선언
1994년 유엔 카이로 인구개발국제회의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 여성은 성관계의 여부, 시기와 파트너, 임신·출산 여부와 시기 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지며, 국가는 이에 대한 양질의 사회서비스 및 정보에의 접근권, 건강권 등의 포괄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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