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객원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사소한 증세를 조심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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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둥병으로 불리는 한센병과 결핵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요. 겉보기엔 한센병이 훨씬 끔찍합니다. 피부 괴사가 일어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하게 변합니다. 오죽하면 천형(天刑)이라고까지 불렀겠습니까. 그러나 한센병으로 죽는 일은 없습니다. 전염력도 약합니다.

결핵은 중세 여성들이 일부러 결핵 감염을 자청했을 정도로 우윳빛 뽀얀 피부를 만들어냅니다. 저도 결핵 병동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침대에 화사한 얼굴로 숨을 쌕쌕이며 앉아있던 여성환자가 불과 며칠 만에 숨지는 경우도 목격했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이지요.

아토피로 발갛게 성이 잔뜩 나 부어오른 피부와 발바닥에 갑자기 생긴 1㎝ 짜리 점,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요. 당장 괴롭고 끔찍하기엔 아토피가 한 수 위겠지요. 그러나 아토피는 기본적으로 양성(良性) 질환입니다. 아무리 심해도 절대 숨지거나 후유증을 남기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전염도 안 되고 시간이 지나면 느리지만 조금씩 좋아지지요.

하지만 발바닥에 갑자기 생긴 큰 점은 피부암일 가능성이 큽니다. 점이 불과 수 밀리미터만 피부 깊숙이 파고들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생명을 위협합니다.

공황장애와 조울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엔 공황장애가 훨씬 증상이 심각합니다. 발작이 오면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불안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합니다. 그러나 공황장애 때문에 실제로 죽는 일은 없습니다. 환자 스스로 그렇게 느낄 뿐입니다. 치료도 약물로 잘 되는 편입니다.

조울병은 갑자기 황제라도 된 듯 천하가 자기 것인 양 기분이 좋아집니다. 무드가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무드가 떨어지면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보기보다 무서운 병이지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질병도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질병 가운데서 가장 극렬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 요로결석입니다. 비록 간헐적으로 나타나지만 마치 불에 달군 칼끝으로 옆구리와 아랫배를 찌르는듯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요로결석은 대부분 치료가 잘 되며 후유증도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증 없이 소변에 살짝 섞여나온 피 몇 방울은 치명적인 방광암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질병의 세계에서 주관적 고통과 객관적 위중도는 대개 일치하지 않습니다. 교훈은 간단합니다. '내 몸은 내가 안다'는 태도는 자칫 선무당이 사람잡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 없던 증세가 갑자기 나타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의사를 꼭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홍혜걸 객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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