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미래교육 청사진 마련하자”…교육학·인구학·IT 전문가 머리 맞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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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인구절벽, 글로벌 경제 급변 등으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대입제도 공정성 논란에 얽매어 미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의 근본적 쇄신에 대해 아무 준비가 없다.”

3일 서울 중구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좋은교사운동, 교육을바로세우는사람들, 행복한미래교육포럼 등 교육단체와 각계 인사들이 모여 ‘10년 뒤 교육’을 내다보고 설계도를 만들어가자는 시민운동인 ‘교육의 봄 10년 플랜(교육의봄)’의 출범식을 갖고 컨퍼런스 열었다.

교육의봄 측은 이날 출범식에서 “세계는 경쟁과 암기가 아닌 협업과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시대는 기계에 없는 능력, 즉 공감과 상생을 미래 역량으로 요구하고 있다”면서 “유감스럽게도 최근 한국의 교육 정책은 세계의 흐름과 역행하는 ‘수능을 통한 한줄 세우기’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쉼없이 이어지는 학습 부담을 상징하는 쳇바퀴를 학생이 걷고 있다. 교육의봄 측은 앞으로의 교육은 이같은 암기와 경쟁이 아닌 공존과 협업, 상생의 가치 등 미래 역량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교사운동 제공]

쉼없이 이어지는 학습 부담을 상징하는 쳇바퀴를 학생이 걷고 있다. 교육의봄 측은 앞으로의 교육은 이같은 암기와 경쟁이 아닌 공존과 협업, 상생의 가치 등 미래 역량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교사운동 제공]

특히 지난달 교육부가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국가교육회의에서 여론 수렴을 거쳐 최종안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오직 여론의 향방을 보고 나라 정책을 떠넘기려 하니 국민들이 섣불리 의견을 내기조차 두려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중심을 잡지 않으니, 이해집단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 등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유불리를 따지며 현안 정책 대결에 끼어들어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 상태가 되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에 교육의봄 측은 “개별 교육 정책에 대한 정책적 시시비비를 넘어, 모든 교육 정책의 기저에 깔린 가치 패러다임에 대한 재구성하고 우리 교육 10년을 이끌 청사진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며 “이미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와 교육의 혁명적 변화의 바람에 우리 교육도 호응하며 교육의 가치들을 교체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교육의봄 출범식 이후에는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회가 진행됐다. 토론회에서는 국제 교육과정인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전문가인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이종태 21세기교육연구소장 등 교육계 인사를 포함해 인구학 권위자로 꼽히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IT산업 분야의 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대표가 각자의 분야에서 바라본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짚었다.

김영식 교육의봄 공동운영위원장은 “앞으로도 교육계뿐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교육의 역할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미래 교육 10년 설계도를 만들어나갈 방침”이라며 “시민들이 함께 만들고 검증한 설계도를 정부에 제안하고 현실화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교육학자 이혜정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로 화제가 됐던 교육학자.

설계소프트웨어 세계 1위의 강소기업 마이다스아이티의 이형우 대표.
인구학의 권위자로 꼽히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이날 교육의봄 출범식에는 각계 전문가와 국민 100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김 공동운영위원장은 “향후 1만 명의 국민 참여단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의미는 있으나, 이 같은 방식으로 제대로 된 대안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 내다봤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시민단체의 역할을 넘어선 시도”라고도 비판했다. 그는 “교육은 전문분야이고 시민단체는 정책 수요자의 입장을 교육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에게 전달해주는 게 본래의 역할인데, 이번 시도는 시민 단체가 직접 정책을 조정하고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라며 “다소 정치적인 움직임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립대 교육학과 교수도 “그간 한국 교육에서 여러 실험과 대안 마련을 시도했으나 결국 ‘대학 입시’라는 핵심 고리를 풀지 못해 좌초돼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열화된 대학 구조, 학력 위주의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고 대학 입시에 쏠린 병목현상을 해결하지 않는 한 어떤 교육적 대안도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얘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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