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300억 자회사, 4조대 관계사로 전환한 게 핵심 쟁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오른쪽)가 2일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금융감독원의 ‘고의적 분식회계’ 통보와 관련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 [연합뉴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오른쪽)가 2일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금융감독원의 ‘고의적 분식회계’ 통보와 관련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 [연합뉴스]

금감원·삼성 치열한 분식회계 공방

2015년 설립 5년차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년 연속 당기순이익 적자에서 벗어나 단숨에 1조9000억원의 흑자를 올렸다.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의 합작으로 33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삼성바이오에피스 덕분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가진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의 시장가격(공정가치)이 4조8000억원으로 평가됐고, 이 가치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장부에 반영되면서 단번에 흑자 전환한 것이다.

국내 기업이 적용하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종속회사’가 ‘관계회사’로 바뀔 때는 투자한 금액을 반영한 장부상 가치가 아니라 시장 가격으로 환산한 기업가치를 회계장부에 기록할 수 있다. 3억원을 투자해 지은 단독주택이 부동산 시장에서 6억원에 거래된다면 시장 거래 가격이 더 정확한 가격이라고 보는 게 국제회계기준의 원칙이다. 이 때문에 당시 회계 전문가들도 “다소 이상해 보여도 절차는 합법적”이라고 봤다.

금감원 “회사 형태 바꾼 건 기준 위반”

그러나 평소 돈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됐다고 주장하면 믿기가 어려운 것처럼 적자 기업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흑자는 분식회계 논란을 불렀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면서 회계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이 직접 조사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특히 이 사안을 2015년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뻥튀기’한 까닭에 제일모직의 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제일모직 지분을 많이 갖고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에 유리하게 합병이 진행됐다는 의혹으로 연결됐다.

금감원은 지난해 4월부터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고의적인 분식회계가 벌어졌다고 판단했다. 애당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전환할 만한 상황 변화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시장 가치를 평가한 것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법인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일 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봤다.

관련기사

박권추 금감원 회계전문심의위원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종속회사나 관계회사로 정해졌으면 그대로 가야지 도중에 이를 변경하는 것은 회계기준 위반이라고 판단했다”며 “이를 입증할 자료와 정보들을 충분히 수집했다”고 말했다.

삼성 “경영 형태 달라져 바꾼 것”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시장 가치가 2015년에 와서 갑작스럽게 4조8000억원대로 평가됐는지도 핵심 쟁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엔브렐과 레미케이드의 바이오 시밀러(복제약) 의약품이 2015년 10월과 12월 잇따라 한국에서 판매 승인을 받으면서 기업 가치도 커졌다고 봤다. 맥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 기관으로부터 평가받은 이 상품의 수익성을 반영했더니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가 높게 계산됐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합작 투자사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경영권(콜옵션)을 행사할 것이라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판단하게 하는 근거가 됐다. 바이오젠 입장에선 500억원을 투자해 세운 합작사 가치가 5조원에 육박하게 됐으니 응당 공동경영을 하겠다고 나올 수 있다. 만약 바이오젠이 공동경영권을 행사하게 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전적으로 지배 가능한 ‘종속회사’가 아닌 부분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관계회사’로 봐야 한다는 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판단이었다.

심병화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2015년 하반기와 올해 1분기, 미국 바이오젠은 공동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문서를 보내 온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그러나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든, 바이오젠이든 누가 지배하고 있다고 딱 잘라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봤다. 또 금감원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엔브렐·레미케이드의 바이오 시밀러가 주력 시장인 유럽에서 판매 허가를 받는 시점은 2016년 이후이기 때문에 이 제품이 창출할 수익성을 근거로 삼성바이오에피스 기업가치를 5조원 규모로 평가해선 곤란하다는 시민단체 등의 주장도 수용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처리 규정 위반 혐의 자체를 부인하며, 만약 예정대로 징계가 이뤄질 경우 행정소송에 나설 방침도 밝혔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2일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회계법인·회계학 교수 등과 협의를 거쳐 국제회계기준을 충실히 이행했다”며 “금감원이 지적하는 회계처리로 부당 이익을 취한 것도 없기 때문에 분식회계로 봐선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혐의 확정 땐 회계조사 당국도 타격

금감원 통보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적 분식회계’ 혐의가 최종 확정될 경우 파장은 만만찮을 전망이다. 회사를 감사한 회계법인은 물론 금융당국도 이 사건에 연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식시장 상장 직전 기업에 대한 분식회계 여부 조사는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맡는데, 이곳에 조사권을 위임한 곳이 증선위이기 때문이다.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 산정의 적법성 여부에도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제일모직 합병 관련 논란도 커질 듯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책정되는 합병 비율 그 자체에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자회사로 둔 제일모직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을 사후에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CFO·최고재무책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에 발표됐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은 그 이듬해에 이뤄졌다”며 “시점만 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과 두 회사 합병 이슈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도년·하선영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