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친구의 죽음에 대처하는 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81호 32면

책 속으로 

사는 이유

사는 이유

사는 이유
에이미 헴플 지음
권승혁 옮김, 이불

미니멀리즘 예술사조의 대표 격은 역시 미술이다. “과하면 좋지 않다. 적을수록 좋다(More is less. Less is more)” 같은 구호가 떠오른다. 가급적 수다를 삼가고, 중립적·객관적으로 대상에 접근하고자 하는 태도다. 문학에도 있다. 위키피디아는 헤밍웨이 같은 작가까지 미니멀리즘 작가에 포함시킨다. 범위를 넓게 잡은 느낌이지만 말의 경제, 표면 묘사를 중시하는 특징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분류다.

아담한 이 소설책의 저자 에이미 헴플(67)은 레이먼드 카버(1938~88)와 함께 미국 문단에서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가로 꼽힌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소수지만 열혈팬을 거느린 카버에 비해 무명인 까닭은 과작(寡作), 카버 소설보다도 더 희미한 감정 노출 때문인 것 같다. 국내 초역이기도 하다.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못하면 읽기에 실패한다는 얘기, 성공할 경우 여운이 더 오래 남을 수도 있다.

장편의 축소판인 것처럼 방대하고 정교한 한국 단편에 비해 미국 단편은 길이나 구성이 자유로운 편이다. 212쪽 분량에 15편이나 실려 있다.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꼽으라면 ‘상실에 대처하는 법’쯤 된다. 잊히지 않는 상처를 곱씹으며, 절망도 희망도 없이, 현존하는 망자의 기억, 그 거무죽죽한 자국과 함께 하는 시간이 사람이 사는 이유라고 말하는 듯하다.

‘앨 존슨이 묻힌 묘지에서’는 헴플을 스타 작가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들처럼 연대를 나눴던 친구의 죽음에 화자는 오히려 담담하다. 인간의 수화를 배운 침팬지 어미가 새끼를 잃고 터뜨리는, 말 못하는 짐승의 슬픈 수화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