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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 수행원 없이 산책 … 정주영 ‘소떼 길’에 소나무 식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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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7일 오전 9시30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판문각에 도착해 남쪽으로 향한다. 김 위원장은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건물 사이로 난 폭 4m의 길을 따라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어온다. 6·25전쟁 이후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순간이다.

청와대가 밝힌 정상회담 일정

김정은이 지나는 건물 이름에 붙은 T는 ‘임시’를 뜻하는 영어 단어 ‘Temporary’에서 따왔다. 1953년 정전협정을 위한 임시 건물이 무려 65년간 그 모습 그대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단의 상징이 된 T2 건물 앞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김 위원장을 직접 맞는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2018 남북 정상회담’은 이렇게 시작된다.

9시40분 한국군 전통의장대 사열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찾은 미군 참전용사 및 가족들이 북녘 방향을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찾은 미군 참전용사 및 가족들이 북녘 방향을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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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담은 27일 하루다. 각각 2박3일 동안 진행됐던 2000년과 2007년 회담과 달리 압축적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이날 12시간 가까이 만나 두 번의 정상회담과 기념식수, 친교 산책, 공식 만찬 등을 이어간다.

분단의 선을 넘어 만난 두 정상은 전통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나란히 걸어 공식 환영식이 열리는 판문점 광장까지 이동한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개최 측임을 고려해 김 위원장을 상석인 자신의 오른쪽에 두고 나란히 걸어갈 가능성이 크다.

오전 9시40분. 두 정상은 함께 국방부 의장대를 사열한다. 북한 지도자의 국군 사열은 처음이다. 청와대는 평양에서 열렸던 두 차례의 정상회담 때 북한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의장대를 사열하게 했던 전례를 고려해 사열을 결정했다. 다만 예포와 국기 게양 등은 생략했다. 국가 대신 군악대와 취타대가 아리랑을 연주한다. 약 300명으로 구성된 의장대와 군악대가 참여해 진행한다.

정부는 이에 대해 “판문점 지역이 협소한 점을 고려해 1분 정도로 짧게 진행한다”고 설명했지만 복잡한 남북 관계가 감안됐을 가능성이 있다.

사열을 마친 두 정상은 다시 나란히 걸어 정상회담장이 마련된 남측 평화의집으로 이동한다. 김정은은 1층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하고 문 대통령과 기념촬영한 뒤 접견실에서 정상회담에 앞선 사전 환담을 한다.

백두·한라산 흙 섞어 기념 식수 

‘준비운동’을 마친 양 정상은 오전 10시30분 평화의집 2층 회담장의 중앙 출입문을 통해 동시에 입장한다. 청와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의집에 대한 대규모 리모델링을 마쳤다. 원래는 좌우로 나눠 따로 입장했던 출입구를 중앙 현관 하나로 개조했다. 나란히 회담장에 들어선 양 정상은 타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두 사람 간의 거리는 불과 2m18㎜다. 정상들의 모두발언은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회담장·만찬장 등엔 아직 새 집 냄새가 남아 있어 양파와 숯을 곳곳에 깔아놨고 선풍기도 여러 대 동원했다”고 밝혔다. 회담장 개조 공사는 지난 20일에 완료됐다. 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이후 남북 정상은 본격적인 오전 협상을 벌인다. 그런 뒤 양 정상은 따로 오찬을 하기로 했다. 오찬 시간을 사실상 오전 협상에 대한 각자의 ‘작전타임’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수행원들은 재차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이동한다.

남북은 전체 회담 일정에 합의했지만 청와대는 유독 오찬을 어떻게 할지만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때 두 정상이 개성에서 오찬을 할 수도 있다는 등의 ‘파격 행보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남북 정상은 각자의 입장을 정리한 뒤 오후에 다시 만난다.

문 대통령은 오찬을 마치고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온 김 위원장과 함께 소나무를 함께 심는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해인 1953년생인 소나무는 고(故)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으로 갔던 ‘소떼 길’ 군사분계선에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섞어 식수된다.

남북정상·수행원 오후 6시30분 만찬 

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김 위원장은 한강 물을 뿌린 뒤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구의 표지석을 세운다. 표지석에는 양 정상의 서명도 들어간다.

이어 양 정상은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하며 담소를 나눈다. 오전 회담 결과에 대해 양 정상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의겸 대변인은 “두 정상이 산책하는 동안 아무도 따라붙지 않는다”고 알렸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가 판문점 내 동선을 줄이기 위해 습지 위에 만든 다리다. 유엔사가 ‘Foot bridge’라고 부르던 것을 그대로 번역해 도보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나의 봄’ 영상 본 뒤 일정 마무리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 차려진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회담 전 도보다리를 확장 공사해 군사분계선이 표시된 부분까지 연결돼 있는데 두 정상이 그곳까지 가게 될지 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산책 이후 이어지는 오후 정상회담에선 오전에 이어 비핵화 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임 실장은 “합의 내용에 따라 합의문 발표 형식과 장소가 결정될 것”이라며 “정상 간 합의가 이뤄지고 명문화한다면 ‘판문점 선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의 수위에 따라 만찬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 양 정상을 비롯해 수행원들이 참석하는 만찬은 오후 6시30분 평화의집 3층 연회장에서 열린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가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만찬 후 ‘하나의 봄’이라는 영상물을 함께 감상한 뒤 김 위원장 일행을 환송하며 회담을 마무리한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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