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정화"선풍속 대구모 숙정|김재규재판 소수의견 낸 대법관 5명도 옷벗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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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80년 7월9일 국보위는 3급(부이사관·부기감)이상 고급공무원 2백32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했다. 그후 추가숙정으로 숙정인원은 2백43명으로 늘어났다.
6월4일부터 시작된 이 공직수술작업이 엄청나리라는 것은 모두가 대충 짐작했지만 그 결과는 예상보다도 놀라운 것이었다.
장관 1명을 비롯해 차관급만도 37명이나 됐고 1급 35명, 2, 3급 1백70명(2백여명선으로 늘어남)등 최고위공직자 전체정원의 12.1%에 이르는 숫자였다.
건국이래 최대규모인 가위 혁명적인 조치였다. 현직 장관 (이미 의원면직으로 물러난 정재석상공장관)이 숙정된 것도 정부수립이래 처음이었으며 현직 차관들이 재임중 숙정된 것도 초유의 일이었다.
차관급 대상자는 헹정부 차관 6명, 청장 5명, 도지사 5명, 교육감 3명등 32명과 국회사무처및 법원의 5명등으로 정원의 19.3%에 해당됐다.
또 부서볕로는 검찰청이 18명으로 가장 많았고 감사원 13명, 서울시 12명, 철도청·국회사무처·법원 각11명등의 순이었다.
교통부 (41%) 절도청 (37%) 조달청 (33%) 국세청 (32%) 서울시 (30%)는 3급이상 고위간부의 30%이상이 숙정됐다. 대민·현업부서들에 집중적인 철퇴가 가해진 것이다.
숙정대상인원의 숫자도 숫자려니와 숙정자에 대한 추후 처리부문도 이 숙정의 강도를 더해주었다. 숙정대상자의 취업까지 규제한 것이다. 부정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가혹한 제재를 가하고 퇴직공무원이 유관기업등에 취업하여 관청출입을 전담하면서 각종 부정을 자행해온 폐단을 감안, 부정의 사전예방을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국보위 대변인격인 오자복문공위원장(현국방장관)은 숙정을 발표하면서 『정화대상자들은 우선 공직에서 물러나게하고 재직시의 유관사기업 취업을 금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히면서 『숙정대상자중 직권을 이용, 축재한 군등 비위가 현저한 15명은 더 조사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더 조사하겠다는 15명은 김완수교통부차관·이건중조달청장·이용식철도청장·김병만대검공판부장·남규욱강원교육감·박일재문교부기획관리실장·문도상문공부해외공보관장·신유수국세청기획관리관·김유복세무공무원교육원장·원병의경기부지사·한병용여수시장·이상직의정부시장·연기호서울시내무국장·전윤구서울시재무국장·김병린서울시도시계획국장등이다. 그후에 발간된 국보위백서는 이들 대부분의 비위가 상당함을 확인했으나 수십년동안 국가에 봉사해온 점등을 감안, 형사처벌을 유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국보위는 관민들의 여론과 그동안 각 기관에서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는등 신중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했다면서 숙정기준은 ①직권을 남용, 이권에 개입하거나 직위를 이용해 축재한 자 ②국가관이 분명치 못하고 오도된 시국관으로 무사안일에 젖었던 자 ③기회에 편승, 일신의 영달만을 꾀해 공무원사회의 인사질서를 문란케 한자 ④공사생활이 무절제하고 품위나 처신에서 빈축을 받는자라고 설명했다. 또 일부는 후진을 위해 자진사퇴했다고 밝히고는 4급(서기관) 이하 일반공무원의 숙정은 각부처 장관책임하에 매듭짓게 된다고했다.
최규하대통령은 이같은 숙정작업을 인체에 비유하면 환부를 수술해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것으로 아픔을 참고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1차 숙정에 이어 각부처별로 숙정대상자를 「확정」, 본인에게 통보하고 사표를 받는 작업은 12일을 전후해 끝났고 15일 그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의 제2차 숙정도 역시 건국이래 최대규모였다.
4급(서기관)은 전체정원의 8.6%인 3백73명, 5급(사무관)은 4.7%인 8백91명이었으며 6급이하는 3천4백96명으로 발표됐다.
이 숫자 역시 추가숙정으로 7백여명이 늘어났다.
특히 세무·민원담당및 검찰·경찰등 특수권력기관등에 집중타가 가해졌다.
국세청·관세청은 세무서장의 3분의1이 포함되는등 5백37명 (5백34명으로 발표)이 숙정됐고 전체경찰서장의 3분의1을 포함한 사정기관 공무원 1천5백여명, 시장·군수를 포함한 민원담당공무원 2천여명이 공직을 떠나야했다.
이는 세무공무원의 10.2%, 사정공무원의 28.7%, 민원공무원의 38.7%에 해당되며 교육공무원의 7.6%, 기타공무원의 14.6%가 숙정됐다.
2단계 숙정결과를 발표한 김용휴총무처장관은 『이번 숙정은 1차숙정 기준에 준하여 실사했다』며 『건강허약자와 자진용퇴한 사람도 포함됐다』는 말로 뗘나는 사람에 대해 최소한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숙정에 직접관계한 인사들은 『하위직 공무원에 대하여는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노력한 공로를 참작하고 행정의 공백을 줄이기위해 최소한으로 했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국민의 원성을 사온 일부 세무및 민원담당공무원과 권력을 남용, 비위를 자행해온 검찰·경찰등 사정공무원에 대하여는 중점적으로 정화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아뭏든 당시 퇴직자들이 「학살」이라고 표현한 2차례의 숙정으로 5천6백99명 (정부집계, 당시 발표는 4천7백92명, 80년10월 발간된 국보위백서는 5천4백90명)이 공직에서 추방됐다. 여기에 6월1일자로 단행된 중앙정보부 숙정자를 합하면 6천여명이 직장을 잃은것이다.
그리고 국보위가 당시 숙정의 이름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박정희대통령시해사건과 관련한 김재규전중앙정보부장등의 상고심재판에 간여했던 대법원판사중 군재의 원심판결에 이의를 제기, 소수의견을 냈던 민문기·양병호·임항준·김윤행·서윤홍등 5명의 대법원판사의 법복을 벗겼기 때문에 (8월8일 사표수리, 소수의견을 낸 정태원대법원판사는 81년4월 법관재임명때 탈락) 실제 장관급 숙정인사는 7명이 된다고도 할수있다.
이들 대법원판사들에 대한 숙정명세서는 국보위 정화분과위 간사였던 허삼수대령이 직접 지휘해 작성한것으로 알려졌으나 재판에 대한 간섭이란 논란이 제기될 것을 우려해서인지 끝내 숙정결과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공직사회에 대한 숙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금융기관및 국영기업체등 정부산하단체 임직원에까지 확대되었다.
전국 8천여개에 달하는 정부산하단체 또는 공익단체를 일괄 정화하기에는 시간과 인원이 부족했기때문에 우선 은행과 정부투자기관등에 대해 중점걱으로 메스가 가해졌다.
특히 대국민 접촉이 많고 따라서 선전효과도 클 농협과 수협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도모한다는 목표아래 철저한 정화선풍이 몰아쳤다.
그 결과 1백27개 주요기관의 임직원 3천1백11명(전체의 1.5%) 이 추방됐다.
여기에는 기관장 11명을 비롯해 임원의 4분의1에 해당하는 1백76명이 포함됐다.
국책은행및 5개 시중은행등 12개 은행에서는 행장 4명을 포함, 재직임원의 40%인 45명이 「정화」됐고 농·수협은 재직임원 60%인 10명과 조합장의 14%인 2백53명이 직장을 떠났다.
이렇게해서 당시 직장을 앓은 사람들은 이후의 언론계 정화조치등을 합쳐 1만여명이 됐고 정부에 반대하는 불만세력을 형성케됨으로써 신군부에 의해 수모를 당한 구정치인 그룹과 함께 민정당정권에 지금까지 큰 부담이 되고있다.
일부 착오는 있으나 옥석을 가리는데 최대한 노력했다는 국보위관계자들의 주장과 잘못도없이 억울하게 학살됐기때문에 명예회복과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 퇴직공직자들의 주장은 어떤 타협점을 찾지 못한채 오늘에도 사회·정치적 현안의 하나로 살아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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