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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전협정 현장 찍던 사진기자, 北이용호 아버지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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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판문점 휴전회담서 정상회담까지 

판문점엔 남북한 분단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추억과 가족사도 서려 있다.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수행해 판문점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용호 외무상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의 부친 이명제 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당시 현장을 카메라로 담았던 북한 사진기자였다. 이런 사연 때문인지 아들인 이용호가 판문점을 갈 때면 그는 꼭 사진을 찍어 자신에게 보여 달라고 했다.

이명제가 기억하는 판문점은 지금의 판문점과 다르다. 당시는 군사분계선(MDL) 북쪽으로 800m 떨어진 곳에 급조한 목조건물 ‘평화의 전당’이었다. 정전협정은 이곳에서 체결됐다.

현재 판문점은 MDL 위에 들어선 3동의 푸른색 단층 건물(회담장)들로 대표된다. 53년 10월 새로 만든 조립식 건물들이다.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 회의실(T1)과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본회의실(T2), 군정위 소회의실(T3) 등이다.

판문점 휴전회담서 정상회담까지

판문점 휴전회담서 정상회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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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temporary(임시)’의 약자다. 임시 건물이라는 뜻이다. 건물을 세울 때만 하더라도 누구도 정전이 65년 넘어 계속될지 몰랐다는 흔적이다. 정전은 종전이 아닌 잠시 전쟁을 멈췄다는 의미다. 회담장 책상 위에는 마이크와 이를 연결한 케이블이 있다. 케이블을 기준으로 남북한이 구분된다.

6·25 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은 51년 7월 10일 북한의 개성 북쪽 내봉장에서 처음 열렸다. 이후 정전협정 체결까지 휴전회담은 모두 765회 계속됐다.

개성에서 열리던 휴전회담이 판문점에서 시작된 건 51년 10월 25일부터였다. 변변한 건물이 없는 콩밭에 군용 천막을 치고 회담을 했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판문점의 시작이다.

판문점은 개성에서 직선거리 10㎞, 서울에선 52㎞, 평양에선 147㎞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판문점(板門店)이란 이름은 회담에 참가한 중공군이 널문리 주막을 중국식 한자로 표기하면서 탄생했다. 공식 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이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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