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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세청·국토부 조사 부른 '물컵갑질'

중앙일보

입력

'물컵 갑질' 논란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 [일간스포츠]

'물컵 갑질' 논란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 [일간스포츠]

조현민(35)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탈세수사로 확산되고 있다.

경찰은 13일부터 조 전무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고 19일에는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관세청도 18일부터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명품 밀반입’ 조사에 착수했으며, 20일 본사와 총수 일가 자택 3곳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조 전무의 불법 임원 재직으로 항공사업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18일 자체감사에 들어갔다. 사정 기관이 세 군데에서 대한항공 총수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칼피아(KAL+마피아)’란 적폐청산의 문제로 보고 접근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며 "갑질 문화는 국민 삶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불공정 적폐로 국민의 눈높이와 제도, 관행 괴리가 아주 큰 분야"라며 전면에 나섰을 정도다.

칼피아란 업계 1위 대한항공과 관련 업계, 부처 공무원이 유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칼피아 문제를 짚어봤다.

15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입국하며 "제가 어리석었다"면서도 "얼굴에 (물을) 뿌리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캡처 MBC=연합뉴스]

15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입국하며 "제가 어리석었다"면서도 "얼굴에 (물을) 뿌리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캡처 MBC=연합뉴스]

◇발단은 물컵, 확산은 관세회피로=지난달 16일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광고회의에서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가 광고대행사 팀장을 향해 물을 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갑질 파문에 휩싸이자 바로 휴가를 떠났던 조 전무는 15일 입국하며 취재진에게 "제가 어리석었다"면서도 "얼굴에 물을 뿌리지 않았다. 밀쳤을 뿐이다"라고 부인했다. 이에 서울 강서경찰서가 13일 특수폭행 또는 업무방해 혐의를 염두에 두고 내사에 착수했다. 내사착수 나흘만인 17일 경찰은 “조 전무가 종이컵에 든 매실 음료를 광고대행사 직원을 향해 뿌렸다. 피해자가 얼굴과 안경, 어깨를 닦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조 전무에 대한 출국정지를 법무부에 요청했다.

조 전무의 ‘물컵 갑질’은 대한항공과 진에어 내의 추가적인 ‘갑질’ 고발로 이어졌다. 조 전무는 대한항공 전무, 진에어 부사장, 한진칼 전무, 한진관광 대표이사, 칼호텔 네트워크 대표이사, 정석기업 대표, 싸이버스카이 사내이사 등 7곳에서 임원을 맡고 있다. 먼저 14일 대한항공 본사 사무실에서 조 전무가 간부급 직원에게 고성과 폭언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담은 15분가량의 음성 파일이 공개됐다. 이어 조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2013년 리모델링을 진행하던 인테리어 업체 직원들에게 폭언한 것으로 추정되는 녹취도 나왔다. ‘땅콩 회항’으로 논란이 됐던 조현아(44) 칼호텔 네트워크 사장, 교통경찰을 치고 달아나다 붙잡혀 공무집행 방해로 입건된 조원태(42)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등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인성 논란’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내부고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총수 일가가 고가의 면세품을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대한항공 지상직 직원들이 이용하는 전용 통로를 이용해 들여왔으며, 체리ㆍ양배추ㆍ소시지 등을 들여오는데 직원을 동원했다는 제보도 나왔다. 소시지 등 육가공품은 가축전염예방법에 따라 반드시 검역을 받아야 한다. 관세청은 가구 등을 항공기 부품으로 위장해 밀반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한항공 일가는 세관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일종의 ‘치외법권’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셈이다.

관세청은 조양호 일가 5명의 해외 신용카드 사용 내역도 조사 중이다. 명품 원피스 등을 들여왔다는 익명의 제보가 보도되면서 ‘관세 회피’ 의혹이 제기되는 만큼 최근 5년 치 해외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20일에는 조 전무 등 일가의 자택 3곳을 압수수색하고 고가 명품 리스트를 작성해 밀수 여부를 확인한다. 밀수에 해당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포탈세액의 10배나 물품 원가 중 높은 금액 벌금형이 내려진다. 앞서 대한항공 측은 밀수 의혹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곤란한 제보가 많다”는 입장을 내놨다.

2014년 12월 '땅콩 회항'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국토부에 출두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중앙포토]

2014년 12월 '땅콩 회항'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국토부에 출두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중앙포토]

◇재점화된 칼피아 논란=대한항공 총수 일가 수사와 함께 ‘칼피아’ 논란도 재점화하고 있다. 칼피아 논란은 지난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불거졌다. 당시 국토부의 항공안전감독관 16명 가운데 14명이 대한항공 출신이었으며, 조사과정에서 대한항공 측에 문서를 유출해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국토부는 이를 계기로 ‘칼피아’ 차단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오는 2019년까지 대한항공 출신을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관석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14년 1월 기준 16명이었던 대한항공 출신 항공안전감독관의 수는 2015년 15명으로 줄었다가 2016ㆍ2017ㆍ2018년 모두 19명으로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조차도 대한항공의 눈치를 볼 만큼 업계 영향력이 막대하다”고 전했다.

국토부 일부 공무원이 조 전무가 불법으로 진에어의 등기이사로 일하도록 눈감아줬다는 의혹도 받는다. 항공사업법상 외국인은 등기임원에 오를 수 없다. 조 전무는 1983년 미국 하와이주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로 성인이 된 뒤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조 전무는 등기이사를 지내 불법행위를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국토부는 18일 “미국 국적의 조현민 전무가 진에어 등기이사로 있던 2010년 3월~2016년 3월 사이 세 차례 추가 면허 심사를 꼼꼼하게 해야 했다”며 감사에 착수했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경영복귀를 막으려는 시도도 나오기 시작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18일 항공사 업무와 직접 관련된 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았을 경우 집행종료(또는 면제)일로부터 5년간 항공사의 임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땅콩 회항으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던 조현아 사장이 올해 3월 칼호텔 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한 것으로 나타나자 아예 항공사 임원 자격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발의한 법안이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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