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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셰익스피어는 캐릭터 발명왕…1221명을 빚어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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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30면

우리 발로 직접 돌아본 세계 인물기행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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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황광수 지음, 아르테

‘세계 최고 시인’의 자취를 찾아 #런던·파리 등 ‘원작의 고향’ 답사 #인물 평전·관광 안내서 역할 톡톡 #왜 지금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하나 #“그는 모든 시대를 위해 존재했다” #헤겔·마르크스·프로이트와도 연결 #총 100권으로 기획한 야심작 #니체를 알려면 알프스부터 살펴야 #화가 클림트는 19세기 빈의 산물

니체

이진우 지음, 아르테

클림트

전원경 지음, 아르테

글이건 그림이건 음악이건 명작은 적시·적소(適時·適所, right time, right place)의 산물이다. 작품을 둘러싼 시간과 장소를 모른다면 깊은 이해는 불가능하다. 해설서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칸트나 헤겔의 저작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저작으로 직접 뛰어들어 읽어야 한다. 해설서만 백날 읽어봐야 헛일이다. 하지만 좋은 해설서 한 두 권을 읽는 것은 명작의 세계로 뛰어들 자신감, 용기와 동기를 준다.

『셰익스피어: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는 불멸의 극작가·시인인 셰익스피어(1564~1616)와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서다. ‘셰익스피어 개론’이다. 차별성은 개론과 여행기·기행문을 결합한 접근법에 있다. 고급 관광 안내서 구실도 할 수 있다.

니체

니체

셰익스피어는 38편의 희곡, 154편의 소네트, 2편의 서사시를 썼다. 호메로스·성경·셰익스피어는 서구 문명의 3대 문헌적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 문화의 정전(正典, canon) 중에서도 손꼽힌다.

물론 셰익스피어 문외한이라고 해서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명저 읽기를 사는 낙으로 삼는다면 또 서구 문화를 뿌리부터 이해하려고 한다면, 셰익스피어를 피하고도 떳떳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저자 황광수는 “헤겔·마르크스·니체·프로이트·데리다 등을 읽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셰익스피어와 마주치게 된다”고 말한다.

국민대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인 저자는 편집자·평론가·번역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모습을 이번 ‘셰익스피어 로드’ 기행을 통해 새로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모든 개론이 다 그렇듯, ‘셰익스피어 개론’은 셰익스피어에 대해 두루두루 꿰고 있는 사람만 쓸 수 있다. 저자의 문체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중 누가 더 위대한 시인인가’라는 쓸데 ‘있는’ 혹은 ‘없는’ 논쟁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셰익스피어의 손을 들어줬다. 괴테는 시인으로서의 셰익스피어를 시의 역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클림트

클림트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1221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인간성을 발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문학뿐만 아니라 심리학에도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런 셰익스피어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한다’와 ‘65세 되기 전에는 셰익스피어 읽지 말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읽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게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영화·연극으로 접하는 것과 글로 대하는 것은 별세계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극이나 영화로 상영하면 약 2시간이다. 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글로 셰익스피어를 만나는 것은 사서 하는 고생이다. 우리말로 셰익스피어를 읽는다면, 자칫 잘못된 번역본을 만나 쓰라린 경험만 남을 수도 있다. 영문판을 읽는다면 눈이 부지런히 주석과 본문 사이를 오가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근거가 강력하면 행동이 강력하다”고 했다. 독서가 근거다. 셰익스피어를 날림으로 읽었더라도 어깨에 힘주고 다닐 수 있는 게 아닐까. 평생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글 혹은 공연으로 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셰익스피어를 알면 이득이다. 영국 사람들을 만나 한 마디 아는 척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저자는 영국 계관시인이었던 벤 존슨(1572~1637)을 인용하며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할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해 존재했다!(He was not of an age, but for all time!)”

존 길버트(1817~1897)가 그린 ‘셰익스피어의 희곡’.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과 장면을 형상화했다. 셰익스피어는 1221명의 인물을 만들었다. 영국을 떠난 적이 없었으나 이탈리아·그리스·프랑스 등을 무대로 그곳에 살지 않았으면 쓸 수 없는 글을 썼다. [사진 소피]

존 길버트(1817~1897)가 그린 ‘셰익스피어의 희곡’.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과 장면을 형상화했다. 셰익스피어는 1221명의 인물을 만들었다. 영국을 떠난 적이 없었으나 이탈리아·그리스·프랑스 등을 무대로 그곳에 살지 않았으면 쓸 수 없는 글을 썼다. [사진 소피]

저자 황광수는 세 지역을 누볐다. 영국, 파리에서 빈에 이르는 유럽 중서부, 이탈리아에서 그리스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이다. 우선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사망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으로 떠났다. 당시 인구 1500명의 작은 읍이었다. 지금은 셰익스피어 덕에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현장에는 현장의 디테일이 있다. 현장에 가야 ‘아하’하며 오랜 의문을 풀 수 있다. 저자는 2014년 여름부터 셰익스피어 기행에 나섰다. 21곳에 이르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지를 방문했다. 이 책에 인용한 모든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절들을 직접 우리말로 옮겼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기초적인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백과사전 읽기로 충분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에 담긴 장소들에서 보고 읽고 생각한 것을 떠올리며 쓴 것이다.”

저자의 눈에 셰익스피어 생가 길목에 걸린 현수막이 들어왔다. ‘450년 젊은 셰익스피어(Shakespeare: 450 years young)’라고 적혀 있었다. 2018년 기준으로는 ‘454년 젊은 셰익스피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 사극의 특징’ ‘셰익스피어의 시 세계’ ‘셰익스피어 문학의 키워드’ ‘셰익스피어 문학의 특징과 현재적 의미’ ‘셰익스피어 생애의 결정적 장면’과 같은 꼭지를 통해 셰익스피어 개론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또 셰익스피어 희곡 36편을 적절히 기행문 부분과 융합했다.

『셰익스피어』는 총 100권으로 기획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제1권이다. 제2권은 『니체: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이진우 지음)이다. 『니체』에서 저자는 “알프스를 체험하지 않고서는 니체의 철학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셰익스피어』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니체』의 저자는 현장에서 전혀 다른 작가를 발견했다. 이진우 작가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대립과 조화,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 알프스를 실제 체험하지 않고서는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제3권은 『클림트: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다. 저자 전원경은 “그의 그림들은 모두 빈이라는 아주 특별하고 시대착오적인 공간이 아니고서는 잉태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클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순으로 가득 찬 이 도시 빈과 오스트리아 제국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지나친 음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의 사망 50년 후 한 성직자가 그런 기록을 남겼다. 인생 100세 시대다. 지나친 음주 대신에 셰익스피어·니체·클림트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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