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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아내 12년 몰래한 사랑···684명 듣는 기쁨 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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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랑의달팽이'의 지원으로 인공와우(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은 어린이와 김민자 회장(오른쪽) [사랑의달팽이]

'사랑의달팽이'의 지원으로 인공와우(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은 어린이와 김민자 회장(오른쪽) [사랑의달팽이]

청각장애아 684명에 '듣는 기쁨' 선사한 배우 김민자, 국민포장 받는다

이 모(11)양은 태어나자마자 청각장애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인공와우(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으면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500만원이 넘는 수술비는 큰 부담이었다. 그러다 2살 때인 2009년 청각장애인 지원 단체인 ‘사랑의달팽이’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게 됐다. 1년여의 언어 재활 치료 비용도 지원받았다. 이양은 누구보다 쾌활하고 조리있게 말 잘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사랑의달팽이 회장인 배우 김민자 씨가 이양과 같은 청각장애 어린이 684명에게 ‘듣는 기쁨’을 찾아준 공로를 인정받아 20일 제38회 장애인의날 국민포장을 받게 됐다. 지난 12년간 사랑의달팽이를 이끌어온 김 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닌데 큰 상을 받게 돼 기쁘면서도 큰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평생 배우로 살아온 그가 사회복지단체 운영을 맡게 된 건 오랜 지병 때문이었다. 김 씨는 “젊은 시절부터 귓속이 ‘윙’하고 울리는 이명 현상으로 고생해서 난청의 고통을 알게됐다”며 “듣지 못하면 소통이 불가능해지고, 사람에게서 멀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주치의가 청각장애인 지원 단체를 만들려 하는데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라며 “연기하면서 국민들에게 받아온 사랑을 뭔가 좋은 일로 갚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배우 최불암)이 35년간 어린이재단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봐왔기에 큰 고민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랑의달팽이는 선천성 청각장애아에게 인공와우 이식 수술과 언어 재활 치료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중위소득 80% 이하의 저소득층 가정에 집중 지원한다.

김씨는 “2000년대 초반엔 인공와우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4000만원 가까이 들었다”며 “지금은 수술비가 많이 줄었지만, 재활 비용까지 포함하면 아이 한 명당 수천만 원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술하고 재활치료를 하면 충분히 회복 가능한데도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장애를 안고 사는 아이들이 있다”라며 “장애로 인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랑의달팽이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아이들로 구성된 클라리넷 앙상블을 운영한다. 악기를 사주고, 강사를 모셔 주 1회 무료 레슨을 한다. 매년 가을 연주회를 연다. 김 씨는 “아이들이 귀에 인공와우를 꽂고 있다 보니 자라면서 놀림을 받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라며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앙상블을 꾸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앙상블에서 악기를 배운 아이가 최근 음대에 진학하는 경사가 있었다”며 “기적 같은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들과 함께한 김민자 회장(왼쪽 네번째)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들과 함께한 김민자 회장(왼쪽 네번째)

사랑의달팽이는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보청기를 지원하는 사업도 한다. 광부ㆍ해녀 출신, 6ㆍ25 참전 용사 등 2589명의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바라던 ‘좋은 일’을 하고 있지만 김 씨는 ”늘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더 많은 분에게 힘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요. 힘 닿는데 까지 노력해 보렵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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