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일보를읽고

혼혈인 무시하면 우리도 외국서 무시 당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새로 결혼하는 열 쌍 중 한 쌍은 국제결혼이라 한다. 혼혈이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미국 같은 다민족사회에선 다른 민족과 잘 조화하며 살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하지만 단일민족임을 강조해 온 한국인들은 다른 민족과 더불어 사는 일에 서툴기 짝이 없다. 15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한.흑 갈등이 단적인 예다. 다른 민족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본 경험이 없다 보니 타민족과의 갈등, 피부색에 대한 배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한국인은 별 인기가 없다. 15년 전 뉴욕에서 실시된 50개 민족에 대한 인기투표에서 흑인이 42등, 한국인은 43등이었다.

최초의 조선왕실 통역관이었던 윤치호는 그의 일기에 "조선인들은 오랜 세월을 고립돼 살아온 까닭에 너무 오랫동안 우리에 갇혀 살아온 짐승이 문을 열어 줘도 나오려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썼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는 미국의 한.흑 갈등 당시 흑인 측 대표들과 여러 차례 방송에서 공개토론을 했었다. 그들의 불만은 흔히 알려졌듯이 "한국인들이 흑인지역에서 돈을 벌면서 왜 지역사회 발전에 그토록 인색하냐"는 것이 아니었다. 불만의 핵심은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왜 한국인은 흑인을 멸시하느냐다. 이 때문에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뉴욕에 있는 WWRL 흑인 라디오의 두 시간짜리 공개토론 도중 멀리 코네티컷에 사는 한 흑인 주부가 필자에게 공개 질문을 해왔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도 한국에 있는 흑인들을 멸시한다는 데 그게 사실입니까?" 필자는 한국인들이 흑인을 멸시한다면 어떻게 한국 여성과 흑인 남성의 결혼이 숱하게 이뤄질 수 있었겠는가 하고 반문하며 얼버무린 적이 있다.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가 다른 민족의 피부색을 거부할 때 우리 자신도 국제사회에서 거부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동족임이 분명한 한국 내 혼혈인들에 대해선 팔 벌려 포용하는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헨리 홍 백석대 영어학과 교수

비폭력운동본부 인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