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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뷰&]여성 인력 경력 단절 막아야 기업, 경제 성장한다

중앙일보

입력

김주연 한국P&G 대표이사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낮은 출산율과 여성의 저조한 경제 활동 참여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저하하는 두 가지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아이를 많이 낳고 여성의 경제 참여가 많아질수록 국가나 기업 입장에서도 더 좋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말에도 들려왔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산율 꼴찌 소식은 이제 더는 놀랍지 않을 정도다. 출산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진 유럽도, 프랑스가 여성 1인당 2.07명, 영국은 1.89명인데 반해 우리는 1명을 간신히 넘는다. 이와 같은 격차가 계속 축적되면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도에도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아울러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연령대가 높아짐에 따라 지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은행 보고서를 보면 20대 후반의 여성 경제 참여율은 75%지만 30대에는 58%로 내려선다. 고위직에서 여성 비율은 겨우 2%에 불과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미혼남성과 미혼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차이는 1.8%에 불과하지만, 나이가 들어 결혼한 이후에는 30.9%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남성과 대등하게 교육을 받고 사회 첫걸음도 함께했던 여성이 나이가 들수록 일터를 더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장인들은 보통 삼사십대에 중간관리자로 성장하면서 업무역량, 조직인사관리 등의 여러 면에서 부담이 커진다. 동일한 시기에 많은 여성은 출산과 육아, 자녀의 학교입학 등 가정 내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이런 힘들고 중대한 시기에 일과 가정을 병행하도록 돕는 사회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고, 경직된 기업 문화도 아직 공고하다. 그 결과 일과 가정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내몰리고, 결국에는 직장을 떠나는 여성이 많아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나 기업은 여성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고 상황이 개선되고는 있다. 그러나 여러 수치에서 보다시피 성과는 여전히 초라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최근에 한국을 방문했던 IBM의 버지니아 로메티 CEO를 만났다. IBM은 업무 역량 평가 척도에 양성평등 항목이 공식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평가 지표에 포함되다 보니, 여성 직원 숫자나 여성 임원 비율이 높다. 한국의 여성 임원 비율은 현재 37%에 이른다

P&G 또한 누구보다 오랜 시간 동안 여성 인재의 역량 강화에 힘써왔다. 다른 기업에서도 부러워하는 다양한 출산, 육아 지원 제도와 활발한 멘토쉽 등이 있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2년 전부터 P&G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100명의 여성 인재들을 선발해 최고위 임원진과 1:1로 매칭을 한다. 그리고 옆이나 뒤에서 간접적으로 응원하고 지원하는 멘토쉽에서 그치지 않고, 앞에서 직접 끌어준다. 해당 여성인재가 당면한 장애물을 함께 제거하고 성장과 승진의 기회를 찾아 핵심 리더로 성장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이뤄내야만 담당 임원의 임무가 완수된다.

기업의 내부 제도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여성의 천국이라는 싱가포르 사례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집안일을 도와줄 수 있는 가사도우미의 임금이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합리적인 비용에 육아와 가사를 맡길 수 있다면 경력을 포기하는 여성은 줄어들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멋진 커리어를 이어가는 선배들이 많아지면 후배들도 같은 길을 걸으려 할 것이다.

많은 리더가 얘기하듯이 양성평등실현은 여성 개인의 만족과 성장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조사자료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맥킨지는 전 세계 95개국에서 직장, 사회제도, 경제적 기회 측면의 남녀불평등이 제거된다면, 2025년까지 최대 28조 달러 규모의 국내총생산(GDP)을 추가로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에 맞먹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것은 경제성장이나 기업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성별, 인종, 종교 등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보다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도 실천은 언제나 제일 어렵기 마련이다. 기업은 조직 구성원들이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업무평가지표에 반영하거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조직원들을 끊임없이 격려해야 하며, 이 노력은 변화가 가시적으로 나타날 때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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