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담긴 살인마의 진짜 얼굴…니코틴 살인 사건의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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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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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신혼여행을 떠난 나영(가명)씨. 하지만 신혼의 단꿈은 한순간에 비극으로 바뀌었다. 6일 SBS ‘궁금한 이야기 Y’는 일본에서 벌어진 신혼부부 니코틴 살인사건의 전말을 다뤘다.

18살 소녀와 결혼시켜달라던 22살의 청년

생전 나영(가명)씨와 정모씨가 찍은 사진.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생전 나영(가명)씨와 정모씨가 찍은 사진.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나영씨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 사장님의 아들 정모(22)씨는 그녀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영씨 어머니에게 결혼을 시켜달라고 했다. 나영씨 어머니는 “만 스물도 안 되는 애한테 결혼을 허락하겠어요. 계속 뜯어말렸죠”라며 “내년 생일이 지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월 12일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이날은 성인이 되는 날이었다. 부모 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된 날, 두 사람은 부부가 됐고 이후 일본 오사카로 떠났다.

“나영이는 우울증을 앓았어요”

정씨가 나영씨 죽음 후 그를 그리워하며 SNS에 올린 글.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정씨가 나영씨 죽음 후 그를 그리워하며 SNS에 올린 글.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신혼여행을 떠난 지 이틀째 새벽 나영씨가 사망했다. 정씨는 “소파에 앉아 잠깐 졸았는데 화장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나영이가 발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 나영씨의 사망 원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정씨는 만취 상태였던 나영씨가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는 사망 당시 상황을 묻는 나영씨 친구에게 “나영이가 어릴 때부터 가족들한테 학대를 당했어. 나영이 사정을 알게 된 후 그때부터 내가 지켜야겠단 생각을 했어. 얘랑 살면 행복할 것 같았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1년 동안 정씨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꾸준히 ‘진심으로 사랑했다’ ‘꿈에 나영이가 나왔다’ ‘너무 보고 싶다’며 나영씨를 그리워하는 글을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린 나이에 신혼여행에서 아내를 잃은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청년이었다.

매일 적은 일기에 나온 담긴 살인계획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나영씨는 사실 조금 특이하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 나영씨 위 안에서 알코올이 나왔는데,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혈액에서도 알코올이 검출된다. 그러나 나영씨는 위에서만 알코올이 검출됐다. 유 교수는 “사망 직전이나 사망 직후, 혈액순환이 되지 않을 때 입으로 알코올이 들어간 것 같다”고 추측했다.

경찰은 이러한 부검 결과가 나온 데다 정씨의 일기장을 발견한 후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김도형 세종경찰서 형사계장에 따르면 정씨의 일기장에서는 ‘돈’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3억 정도의 돈이 나온다는데, 건물을 사면 매월 150이겠지만 은행에 넣으면 50이 나온다. 안전하게 가자, 안전하게.”

또 나영씨의 ‘우울증’에 관한 부분도 발견됐다. 정씨는 “나영이를 어떻게 해서든 우울증을 만들어야겠다. 시비를 걸어서라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싸워야 한다. 나 없이는 안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적었다.

결정적으로 니코틴 음용 방법과 주사방법에 관한 내용도 나왔다. “햄스터를 구해서 실험해 봐야겠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김 형사계장은 전했다.

“정씨는 목표달성을 위해 살해도 상관없는 사람”

정씨가 나영씨를 그리워하는 글을 올리던 시기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미성년자에 관한 음담패설 글.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정씨가 나영씨를 그리워하는 글을 올리던 시기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미성년자에 관한 음담패설 글. [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오사카를 가기 전 여행자 보험을 들었던 정씨는 나영씨 사망 이후 보험사를 찾았다고 한다. 보험회사 직원은 “보험금이 남편과 사망한 분의 부모에게 배분된다고 하자 정씨가 ‘그런 게 어딨느냐. 내가 남편인데 나한테 다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화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씨의 숨겨진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나영씨를 그리워하는 SNS 글을 올리던 그때,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미성년자들에 대한 음담패설이 담긴 글을 썼다.

실제로 그의 가게에서 일했던 학생들은 “정씨가 저보고 ‘나영 언니 닮았다’면서 만나자고 했다. 다른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다가갔고, 가정이 힘든 애들한테 먼저 다가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는 현재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 해 니코틴을 주입하도록 도와줬을 뿐이지, 살해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는 “정씨는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사람을 살해하거나 어떤 일이 벌어져도 괜찮은 사람”이라며 “빠른 시간 안에 내가 원하는 돈을 벌어서 살아가는 것이 목표이지 피해자들의 고통이나 사회가 겪게 되는 혼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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