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현실 눈으로 보는 「서사회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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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올림픽을 80여일 앞둔 이 여름에 우리화단을 뜨겁게 해주는 두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 하나가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정경연전」(30일까지)이고, 또하나는 가나화랑에서 열기를 뿜고있는「임옥상아프리카 현대사전」(7월 2일까지)이다.
아직 30대인 두사람 모두 건전한 작가의식으로 열과 성을 다해 진솔한 작품을 내놓아 애호가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고있다.
정경연씨는 지금까지 장갑류의 섬유작업에서 브론즈·세라믹·테라코타등으로 영역을 넓혀 혁신적인 입체작품을 선보였다.
섬유예술만으로도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가 안주를 거부하고 가마를 만들어 작품을 굽고, 구리에 온갖 착색실험을 다해 전천후작가로 변신한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임옥상씨의 「아프리카현대사전」은 우리 현대회화에 없었던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크기에서 세로 1m50㎝, 가로 50m나 되는 한장짜리 초대형 두루마리 그림이다.
두루마리그림으로 유명한 이인문씨의 『강산무진도』 (44.1㎝×856㎝)처럼 대자연의 경관을 그린게아니고 아프리카인의 수난과 현실을 다룬 주제가있는 「서사회화」다.
임씨가 민중적 시각으로 사회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의식화.
희곡처럼 3막13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 그림이 주제화이면서 일반의 호응이 좋은 것은 두가지 이유때문이다.
첫째는 지식인이나 특정한 미술애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제작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작가의 탁월한 형상력과 그림솜씨다.
흔히 이야기가 담긴 그림은 화제는 풍성해도 회화성이 약한 것이 흠이지만 「아프리카현대사전」은 그렇지가 않다.
사건을 선택해서 이야기를 연결시켜 형상화하는 구성력은 물론 그림재간도 뛰어나다.
3강 강대국에 의한 영토분할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람과 철조망이 그려진 부분을 찢어 긴장을 풀어주는 여유를 보이면서 또하나의 긴장감을 안겨줬다.
클로스업·오버랩같은 영화기법까지 동원, 화면을 변화롭게 구사한 것은 좋지만 색감이 너무 고와 그림이 예쁘다는 꼬집음을 듣는건 생각해야할 문제다.
또 하나 옥의 티라면 50m 그림의 폭이 일정치 못한 점이다. ⑪⑫⑬장면을 그린 끝부분이 다른그림에 비해 10㎝가량좁다.
『「아프리카 현대사전」을통해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자』는 작가의 말처럼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작가의 의식과 회화적역량이 담긴 알찬「한국현대사전」이 기다려진다.
이규일 (계간미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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