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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2명의 '뺑소니 피의자', 누가 그를 죽음에 몰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 17일 새벽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42번 국도에서 뺑소니 사고가 발생했다. *일반적인 뺑소니 사고 이미지로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자료 연합뉴스]

지난 17일 새벽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42번 국도에서 뺑소니 사고가 발생했다. *일반적인 뺑소니 사고 이미지로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자료 연합뉴스]

그날 새벽, 40대 남성은 숨졌다.

“쾅!” 지난 17일 오전 1시 35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42번 국도 이천에서 용인 방향. 서모(27·불구속)씨가 몰던 티볼리 차량이 1차로에 쓰러져 있던 A씨(43)와 부딪혔다. 뭔가를 차로 쳤다고 느낀 서씨는 사고현장에서 110m 정도 직진한 뒤 양촌삼거리에서 반대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2대의 차, 도로 누워 있던 A씨 잇따라 치어 #경찰, CCTV추적끝 차량 운전자 모두 검거 #어느 차량에 의해 숨졌는지 가리려 분석중 #피해자 사망케 한 차량 운전자 형량 더 높아

양촌리 42번 국도는 왕복 4차선으로 사고 구간은 마장택지개발지구를 관통한다. 도로 주변으로는 인도·육교·건물 등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가로등은 설치되지 않았다. 대신 도로 중앙에 놓인 플라스틱 방호벽 위로 차량 전조등 불빛을 반사하는 델리네이터가 촘촘히 박혔다. 5분 후쯤 서씨는 2차로를 주행하며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만 A씨쪽을 살펴보고는 곧바로 양촌리를 벗어났다.

지난 17일 새벽 뺑소니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사고현장. 사고지점이 흰색래커 스프레이(왼쪽 아래 붉은원 안)로 표시돼 있다. 김민욱 기자

지난 17일 새벽 뺑소니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사고현장. 사고지점이 흰색래커 스프레이(왼쪽 아래 붉은원 안)로 표시돼 있다. 김민욱 기자

또 다른 뺑소니 피의자 그리고 목격자

서씨가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사이 뒤따르던 박모(25·불구속)씨의 코나 차량이 또다시 A씨를 쳤다. 박씨 역시 어떤 물체와 부딪힌 사고임을 직감했지만, 차에서 내려 살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씨의 사고 순간은 ‘목격자’가 있었다.

목격자는 서씨와 박씨 사이에 이 길을 지나가던 화물차 기사 B씨(46)다. 그는 도로 위의 A씨를 발견하고는 50여m 정도 지나쳐 2차로에 차를 세웠다. 이어 “도로에 사람이 쓰러진 것 같다”고 112 신고를 했다. B씨는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려 차에서 내렸다. A씨 쪽으로 걸어가던 중 어둠 속에서 차량의 전조등 불빛이 위아래로 요동치는 장면을 봤다. 박씨의 코나 차량이 A씨와 부딪힌 충격에 ‘덜컹’거린 것이다.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 뺑소니 사고 현장 대략적인 위치도. [자료 네이버지도]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 뺑소니 사고 현장 대략적인 위치도. [자료 네이버지도]

경찰과 119구급대원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의 숨은 이미 멎은 상태였다. 발견 당시 외부 충격으로 인한 두부 손상이 심각했다. 늑골도 부러져 있었다. 경찰은 A씨 주변에서 15㎝ 이상 길이의 파편을 발견했다. 차량 부품과 대조한 결과 엔진 등 주요장치를 보호하기 위해 밑에 씌우는 언더커버(under cover)의 조각임을 알게 됐다. 티볼리로 차종까지 특정됐다.

뺑소니 차량에서 나온 A씨의 '혈흔'

경찰은 사고 현장 주변에 설치된 10여대의 폐쇄회로TV(CCTV) 화면을 입수해 분석에 들어갔다. 먼발치서 소형 SUV 차량이 마장면사무소 소재지 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확보했다. 9시간 만의 추적 끝에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쯤 집에 머물던 서씨를 검거했다. 서씨는 “교통안전 마네킹을 친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박씨도 CCTV 분석에 꼬리가 잡혀 이틀 뒤인 19일 검거됐다. 박씨 역시 “사람을 친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뺑소니 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 이천경찰서 전경. 김민욱 기자

뺑소니 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 이천경찰서 전경. 김민욱 기자

전폭은 차량의 너비다. 티볼리 1795㎜, 코나 1800㎜로 비슷하다.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 이천경찰서에 따르면 서씨와 박씨 둘 다 차로 A씨의 두부를 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차량 모두 하부에서 혈흔과 머리카락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A씨의 DNA와 정확히 일치하는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확인하고 있다.

누가 A씨를 죽음에 이르게 했나…

서씨와 박씨 중 누가 A씨에게 치명상을 줬는지 분석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두 명의 피의자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가 적용됐다. 누가 죽음에 이르게 했느냐에 따라 죗값이 달라진다. 도주차량 죄는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다쳤을 때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낮아진다. 조한갑 이천서 교통조사 1팀장은 “차량 파손상태, A씨 겉옷의 타이어흔적, A씨의 부상부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확한 사고·사망경위를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이천 뺑소니 사고 현장 주변은 택지개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인도가 없다. 술에 잔뜩 취한 피해자 A씨가 어떻게 사고 현장까지 왔는지 의문이다. 김민욱 기자

지난 17일 이천 뺑소니 사고 현장 주변은 택지개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인도가 없다. 술에 잔뜩 취한 피해자 A씨가 어떻게 사고 현장까지 왔는지 의문이다. 김민욱 기자

둘은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운전 중 앞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서씨가 A씨를 차량으로 치기 전 앞서 주행한 한 택시기사는 도로 위에 쓰러진 A씨를 발견하고는 피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화물차 기사 B씨 역시 그랬다. 사고구간이 공사현장으로 어둡지만, 충분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 이들은 사고를 낸 이후 제대로 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술에 잔뜩 취한 A씨가 사고현장까지 오게 된 점은 의문이다. 마장택지개발지구 공사로 인도가 끊긴 지역이기 때문이다. 건설 차량 진·출입로가 유일하다. 경찰은 A씨의 당일 행적도 보강 중이다.

이천=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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