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젊은이들 '3월의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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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조지메이슨대는 경제학과가 아니라 농구로 더 유명하다. 미국 사람들을 광란으로 빠뜨린다고 해서 '3월의 광란' 이라는 별명이 붙은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농구 64강 토너먼트에서 '파이널 포'(final four.4강)에 진출한 것이다. 워싱턴 지역 11번 시드(전체로는 40위 정도)인 조지메이슨대가 3월 27일(한국시간) 8강전에서 워싱턴 지역 1위인 코네티컷대를 누르자 학교는 물론 이 지역 전체가 환호로 뒤덮였다.

조용했던 학교에 지방 언론뿐 아니라 전국 방송인 NBC TV 중계팀도 몰려왔다. 중계차와 카메라맨들이 학교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이제 낯익은 장면이 됐다. 기념 티셔츠를 파는 구내서점은 북새통을 이뤘고, 학생식당에는 코네티컷대를 꺾는 방송화면이 쉴 새 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학생들은 보고 또 보면서 또 환호했다.

이 학교의 종교학과장인 노영창 교수는 "농구 때문에 학교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며 기뻐했다. 대학원 한인학생회장인 정욱씨는 "1라운드에서 탈락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4강까지 올라가 학교 전체가 그야말로 광란"이라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앤드루 플래절 입학처장은 "파이널 포가 열리는 2일에 예비 신입생들이 찾아온다. 지원자가 지난해의 세 배로 늘었다. 우리 대학을 세일즈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며 들떠 있었다.

3월 17일 시작한 '3월의 광란'은 바람처럼 빠르게 진행됐다. 보름 만에 60개 팀이 사라졌다. 16강에서 랭킹 1위 듀크대가 떨어졌고, 8강전에서는 4개 지역의 1번 시드 팀이 전멸했다. 이것이 바로 NCAA 최고의 매력 '전복(upset)'의 묘미다.

듀크대의 농구팀을 응원하는 '캐머런 크레이지스'(Cameron Crazies.듀크대 체육관의 미친 녀석들)는 매년 수천 명이 겨울 내내 학교 운동장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한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면서 경기가 있는 날은 함께 응원하며 열광한다. 그러나 올해는 16강에서 루이지애나대에 지는 바람에 추운 봄을 맞이해야 했다.

NCAA에는 1부 리그만 해도 334개 대학이 있다.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 격인 64강에 오르는 것만 해도 재학생과 졸업생에게는 큰 영광이다. 64강 토너먼트가 열리면 전국에서 동문이 모여든다. 그 지역의 호텔을 전부 예약하는 바람에 타운이 형성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문은 매일 저녁 선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용돈도 주어가며 응원한다. 학생들은 밤새워 응원 준비를 한다. 애교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3월의 광란'에 동참하고 싶은 젊은 혈기는 기막힌 상상을 낳기도 한다. 1963년 시카고의 '맥과이어'라는 선술집(pub)에서 '맥과이어 대학'이 설립됐다. 열혈 농구팬들이 입장권을 배당받기 위해 가짜 대학을 만든 것이다. NCAA는 의심 없이 입장권을 맥과이어대에 할당했으나 2년 뒤 시카고 트리뷴이 '유령 대학'의 진실을 폭로하는 바람에 사기 행각은 멈췄다.

NCAA 64강 토너먼트의 무엇이 미국 젊은이들을 미치게 하는가. 토너먼트를 여러 차례 보고 온 프로농구 KTF의 오경진 통역은 "미국 스포츠는 대부분 '리그'다. 토너먼트 전국대회는 NCAA 토너먼트가 유일하다. '한번 지면 끝'이라는 생각이 젊은이들의 승부 욕을 자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미국 프로농구(NBA)가 개인기 농구라면 대학 농구는 조직력 농구다. 개인을 희생하는 협동정신에 사람들이 크게 감동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시기적으로도 좋다.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수퍼보울이 2월에 끝나면 스포츠 팬들은 갈 곳을 잃는다. NBA가 있지만 아직 포스트 시즌이 아니고, 프로야구(MLB)도 개막 전이다. 스포츠가 공동화된 3월, 지역에 기반을 둔 대학들의 토너먼트 대회가 한바탕 미국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다.

4강전은 2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다. 조지메이슨대는 플로리다대와 맞붙고, 또 다른 4강전은 UCLA와 루이지애나대의 한 판 승부다.

조지메이슨대의 돌풍이 결승(4일)까지 이어질지, 아니면 플로리다대의 태풍이 돌풍을 잠재울지, 광란은 계속된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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