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해시 주포마을 부녀회원 17명이 도의원 출마예정자가 밥값을 대신 내준 저녁을 먹었다가 1인당 11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 해당 주민들이 밭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과태료 낼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과태료를 물게 될 마을 주민 한 사람이 하루 일해 판 채소값 영수증. 쪽파 넉 단과 시금치 여섯 단을 팔아 6500원을 벌었다. 진해=송봉근 기자
31일 경남 진해시 웅동2동 주포마을. 밭에서 시금치를 캐던 김모(62.여)씨는 "10일 전쯤 먹은 오리불고기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한다"고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이 마을 부녀회원 17명은 지난달 18일 오후 7시쯤 마을의 한 식당에 모였다. 밥값 40만원을 5.31 지방선거(경남도의원) 출마 예정자 박모(47)씨가 냈다. 그 사실이 진해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되면서 마을 전체가 한숨을 쉬고 있다.
공직선거법에서 처벌하는 기부행위로 걸린 것이다. 이 마을에 부과될 과태료는 1870만원. 저녁값이 1인당 2만2000원이므로 마을 사람들이 물어내야 할 돈은 밥값의 50배인 1인당 110만원이다. 큰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몸져 누운 사람도 여럿 있다. 80여 가구 20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순박한 시골 마을이 신고자가 누구누구라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인심마저 흉흉해졌다. 이 마을은 채소를 재배해 부산.마산.창원에 내다 파는 가난한 농촌이다. 젊은 사람이 드물어 부녀회원도 주로 50, 60대다. 이번에 적발된 부녀회원들도 농사를 짓거나 날품을 팔아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신모(65)씨는 조카의 밭 300여 평을 빌려 아픈 몸을 이끌고 파와 시금치 농사를 짓고 있다. 하루종일 밭에서 다듬은 파와 시금치 10여 묶음을 채소중간상에 팔아 5000~7000원을 번다. 그가 한 달 20일 정도 일해 버는 돈은 10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 돈으로 생활하고 같이 사는 외손녀(11.초등 4년) 학비도 보탠다. 신씨는 "과태료를 내려면 1년치 채소 판 돈을 몽땅 털어야 할 형편"이라며 울상이다.
마을 입구 구멍가게에서 만난 박모(68)씨는 "영감이 '집 나가라'고 난리를 쳐서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다"며 "자식들의 시선도 따가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건이 터진 뒤 지금껏 누워 있다 이날 처음으로 외출을 했다는 김모(63)씨도 "평소 고혈압 증세가 있어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이번 일을 겪고 약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 등산객이 마을 골목길에 앉아 있던 할머니들에게 과자를 내놓자 "공짜는 싫어"라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 진상은=이날 모임에 갔던 부녀회원들은 지난해 말 바뀐 새 부녀회장 최모(55)씨가 한턱 내는 줄 알고 참석했다고 입을 모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도의원 출마 예정자 박씨가 갑자기 들어와 자기소개를 한 뒤 명함을 돌렸다는 것이다.
진해 선관위 석종근 계장은 "제보로 조사에 착수했는데 부녀회장 최씨와 박씨 등 세 명이 서로 짜고 부녀회원들을 모아 명함을 나눠주고 공약성 발언을 한 뒤 밥값까지 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모임을 주도한 3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17명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석 계장은 "'돈선거'추방 의지를 유권자들이 이해하고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적발된 부녀회원들의 사정이 안타까워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진해=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 50배 과태료=현행 공직선거법(제261조 5항)에는 입후보 예정자나 그 가족, 정당 관계자 등에게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은 유권자에게는 수수액의 50배를 과태료로 물게 돼 있다. 과태료 상한액은 5000만원. 과태료 납부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안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