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5000억원 들인 '정부 일자리 지원' 실상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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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고교생 등 6만2500명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서 '청소년 직장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지원의 일환으로 398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청소년에게 다양한 직장 체험 기회를 제공해 진로 설계에 도움을 주고 직업능력 개발을 지원한다'는 게 노동부의 취지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신문정리 같은 단순한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체국에 가서 우편물 분류 업무 같은 육체노동을 하거나, 공공기관에서 컴퓨터를 즐기며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과거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다.

기획예산처는 올해 산모.신생아 도우미 사업으로 1만1192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기준에 맞춰 계산하니 상시 일자리 창출 효과는 894명으로 줄었다. 12배가 넘도록 고용효과가 부풀려진 셈이다. 예산정책처는 "2주만 참여해도 1명의 일자리를 지원한다고 계산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성부는 성매매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 창업자금을 지원하겠다며 8억원을 배정받았다. 27명을 돕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지원이 이뤄진 경우는 2명. 지원액도 당초 계획의 7.5%인 6000만원만 집행됐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지원 사업이 ▶인원 부풀리기 ▶부실한 사업 구성 ▶부처별 중복 사업 등으로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산정책처가 31일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에게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일자리 지원 사업을 위해 배정한 예산은 총 1조5463억원이다. 지난해보다 1425억원 늘었다. 52만6604명에게 일자리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 일자리 사업의 부실 운영이 여러 번 지적됐는데도 여전히 낭비요소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정부가 대졸 미취업자 등을 해외시장 개척요원으로 파견하는 사업은 올해 수술대에 올랐다. 각 기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선발인원 확대로 결격인원 파견'(국가정보원), '수출실적 없는 후견기업 선정'(감사원), '어학자질능력이 부족한 사람 파견'(국정감사)이라는 지적을 받은 사실도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1999년 출범한 이 사업은 한동안 효과가 괜찮았다. 2001년에는 파견자 중 77.6%가 창업 또는 취업을 했다. 그러나 2004년 청년실업 대책의 일환으로 고려되면서 효율이 뚝 떨어졌다. 2003년 112명이던 대상 인원을 2004년에는 884명으로 늘렸다. 예산도 10억원에서 85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면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창업.취업 비율도 2004년 36.9%로 급감했다. 예산정책처는 "여러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인원을 늘린 것이 사업의 효율성을 급속히 악화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519억원이 배정된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 보건복지부는 당초 5만5000명에게 최소 8개월씩 맡기자고 요청했다.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이 정도 조건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기획예산처의 안에 따라 7만1000명에게 6개월 제공하는 방안으로 조정됐다. 예산정책처는 "체계적 계획 없이 인원확대만 이뤄지면 노인 일자리가 이전보다 더 부실화될 가능성이 짙다"고 경고했다. 노동부.여성부.보건복지부 등의 유사 사업 중복 추진 문제도 지적됐다.

박형준 의원은 "일자리 지원 정책의 내실화를 위해 일자리 창출 관련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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