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대학살 생존 여성···76년 뒤 처참히 살해 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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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11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노인의 시신이 발견됐다. 범인은 피해자를 11번이나 칼로 찌르고, 아파트에 불을 질렀다.

미렐 놀이 살해된 프랑스 파리 11구에 있는 아파트. [AFP=연합뉴스]

미렐 놀이 살해된 프랑스 파리 11구에 있는 아파트. [AFP=연합뉴스]

끔찍한 강력 범죄로만 보였던 사건은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프랑스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피해자는 85세 여성 미렐 놀. 1942년 파리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유대인 체포 작전 ‘벨로드롬 경기장(Vel' d'Hiv Roundup) 사건’에서 간신히 탈출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영국 BBC에 따르면 파리 수사당국은 각각 22세, 29세인 남성 두 명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던 수사 방향도 반유대주의에 초점이 맞춰졌다.

익명의 경찰 관계자는 라디오 ‘프랑스 인포’를 통해 “피해자가 특정 종교인이어서 범죄 목표가 됐는지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일단 가디언도 “용의자 2명은 피해자의 종교를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랑스의 유대인 단체는 이번 사건이 반유대주의 확산과 연관돼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유대인 단체인 ‘프랑스 유대인 대표자회의’는 “사건에 분노하고 우려한다”며 “당국의 투명한 수사를 통해 야만적인 범죄의 동기가 최대한 빨리 밝혀져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마침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사건에 대한 질의를 받고 “현재로썬 반유대주의가 살해 동기라고 확정할 순 없지만,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야 했다. 하레츠를 비롯한 이스라엘 언론들은 르드리앙 장관의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최근 프랑스에선 유대인을 겨냥한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1월 9일 유대인 식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어져 4명이 숨졌다. 프랑스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의 공범인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이었다.

지난해 4월엔 정통 유대교도인 65세 의사 사라 할리미가 구타당한 뒤 아파트 창문 밖으로 던져져 사망했다. 가해자는 이웃에 사는 무슬림이었다.

당초 경찰은 이 사건을 증오범죄로 보지 않았지만, 지난달 열린 재판에서 판사는 반유대주의가 사건의 주요 동기라고 판결했다.

지난 1월엔 파리 외곽의 유대인 식료품점이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전소했다. 이 상점에선 나치를 상징하는 스와스티카(卍)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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