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성 고충 신고로 학교폭력신고 무마하려한 동료교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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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에서 교장·교감, 남 교사가 같은 학교 여 교사의 장애인 자녀 학교폭력 피해를 무마시키기 위해 거짓 성고충 신고를 하고, 폭력 피해를 축소·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는 장애학생에 대한 학교폭력 피해 사안을 축소·은폐한 교사들을 징계하고,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강원도 교육감에게 권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초등학교 교사 A씨(40·여)는 지난해 3월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자 뇌병변 5급 장애를 가진 아들 B군(9)을 같은 학교 2학년 학급으로 전학시켰다. 같은 반 학생들은 장애를 가진 B군의 불편한 걸음 걸이를 흉내내고 좀비라고 부르며 따돌렸다. 지난해 7월에는 B군이 놀림을 당하며 쫓기다가 복도로 나와 우는 일도 있었다.

교대 졸업한 뒤 첫 부임이었던 B군의 담임교사 C씨(24·여)는 이를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장난'으로 보고 학교폭력이나 괴롭힘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B군이 등교를 거부하고 고통을 호소해 엄마인 교사 A씨가 학교폭력으로 이를 신고하려 하자 교장·교감은 신고를 만류했다.

B군이 적응장애를 진단받기에 이르자 엄마인 A교사는 지난해 7월18일 학교폭력 신고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처에 미흡한 담임교사 C씨의 남자친구이자 같은 학교 동료 교사 D씨(33)가 나섰다. 그는 여자친구 C교사가 연루된 학교 폭력 신고를 무마시킬 목적으로 "A씨가 내게 평소 스킨십이 지나쳐 힘들다"고 주장하며 그달 20일 학교에 성고충 신고를 했다가 다음날 철회했다.

교육청 감사 결과 성고충 신고와 철회과정은 모두 교장ㆍ교감, D교사의 공모하로 주도된 허위 성고충으로 드러났다. 교장ㆍ교감은 A교사에게 "이렇게 되면 다 파면이다. 성고충 신고는 학교폭력이 잘 마무리되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D교사는 교장, 교감과 공모해 A교사에 대한 거짓 성고충 신고를 했다.

D교사는 교장, 교감과 공모해 A교사에 대한 거짓 성고충 신고를 했다.

다음 달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서는 '진술이 상반되고 2학년 놀이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학교폭력이 아니다'는 결정이 나왔다. 교장ㆍ교감이 학교폭력전담기구 등에서 "상처받은 건 개인 성향 탓이지 학교폭력 때문이 아니다"며 폭력 피해를 부인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인의 재심청구로 지난해 9월 강원도 학교폭력위원회는 이를 학교 폭력으로 보고 가해 학생 2명의 서면사과, 피해 학생에 대한 심리상담 및 조언 결정이 내려졌다.

인권위 장애차별시정위원회는 교장·교감 등 해당 교사들이 학교폭력 피해를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하며 사안을 은폐ㆍ축소해 피해자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와 '구제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를 외면한 담임교사 C 씨에게 B군의 육체적 정신적 피해가 커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 기관의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강원도 교육청은 허위 성고충 신고를 한 D교사와 교장ㆍ교감, 담임교사에 대해 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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