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감스러운 개헌안 발의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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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와대가 결국 오늘 개헌안을 발의할 모양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에서 개헌안을 의결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전자결재를 한다고 한다. 이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관보에 게재되면 개헌안 공고가 시작되며, 국회는 이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 문제는 누차 지적하듯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것이다. 개헌 저지선(98석)을 넘는 자유한국당의 반대 의사가 분명한 데다 홍준표 대표가 표결에 참여한 소속 의원을 제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까닭이다. 청와대는 4월 임시국회에서 대통령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고, 여야 지도부와 회동해 설득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지만,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하는 일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청와대는 발의를 하더라도 여야가 합의하면 합의안을 존중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총리 선출 방식을 놓고 야당은 국회 선출 또는 추천을 주장하는 반면 정부·여당은 대통령 임명을 고집하는 등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합의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발의를 강행하는 게 여야 합의에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협치 없이 대국민 홍보쇼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개헌은 꼭 이뤄 내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청와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국민이 꼼꼼히 살펴볼 시간이 일주일도 되지 않았던 개헌안을 일방적으로 발의하는 태도보다 국회에서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여당에 힘을 실어 주고 야당을 설득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청와대는 준비한 개헌안에 연연하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개헌은 끝내 물 건너갈 것이며, 국민은 제왕적 대통령과 이별할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