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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에서 스타견 된 ‘오구’ 새 주인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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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 서대문구 안산도시공원에서 만난 구정아 프로듀서와 오구. 구 프로듀서는 "오구의 촬영엔 간식이 필수"라며 "모델견보단 평범한 개로 살아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임현동 기자.

서울 서대문구 안산도시공원에서 만난 구정아 프로듀서와 오구. 구 프로듀서는 "오구의 촬영엔 간식이 필수"라며 "모델견보단 평범한 개로 살아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임현동 기자.

관객 144만 명을 돌파한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감독)엔 귀여운 신스틸러가 있다. 서울에서 힘겹게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고향에 돌아온 혜원(김태리) 곁을 지키는 하얀 진돗개 오구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장에서 김태리(왼쪽)와 오구.

'리틀 포레스트' 촬영장에서 김태리(왼쪽)와 오구.

이 영화에서 오구는 솜뭉치 같은 강아지 시절부터 성견이 된 모습까지 나온다. 성견 모습은 오구와 또 다른 개 진원이 함께 연기했다. 진원이는 개 농장에서 구조돼 동물보호단체 카라를 통해 입양된 진돗개다. 꽃 같은 미모로 ‘견우성’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영화에 먼저 캐스팅됐다.

오구의 성견 모습을 함께 연기한 진돗개 진원. [사진 구정아 프로듀서 인스타그램]

오구의 성견 모습을 함께 연기한 진돗개 진원. [사진 구정아 프로듀서 인스타그램]

진원이의 새끼 시절을 연기할 강아지를 찾은 게 오구다. 구정아(44) 프로듀서는 천안의 동물 보호소에서 이 이름 없는 강아지를 만났다. 그러니 오구는 영화 덕분에 오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구조된 개는 대부분 입양이 안 돼 안락사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봉사활동 하시는 분들이 임시 보호를 해줍니다. 오구의 네 남매도 그런 경우였죠.”
원래는 강아지 시절의 분량을 촬영하고 입양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순탄치 않았다. 결국 제주도에 살고 있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쓴 황성구 작가가 맡겠다고 나섰다. 그새 오구와 정이 든 구 프로듀서는 제주도로 보내기 전날 왈칵 눈물이 났다고 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작가님 집에선 그러면 안 돼’ 하며 애틋한 이별 준비를 하고 경북 군위 촬영장에서 바로 제주도로 보내려던 차였어요. 그런데 조감독이 뛰어오며 ‘오구 한 컷 더 남았어요!’ 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죠.”

영화 ‘리틀 포레스트’ 구정아 PD #보호소서 캐스팅 했다 정들어 입양 #“반려견 사고내면 책임은 주인에게”

강아지 시절 오구. 구정아 프로듀서가 오구를 입양하기 전에 찍었다. [사진 구정아]

강아지 시절 오구. 구정아 프로듀서가 오구를 입양하기 전에 찍었다. [사진 구정아]

그날 제주도에 가지 못한 오구는 구 프로듀서와 함께 서울에 와 예방접종, 피부 치료 등을 마쳤다. 그는 황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오구는 제가 키워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입양을 결코 쉽게 결정한 건 아니었다. 혼자 사는 그는 열두 살 고양이 냥이를 친구와 함께 기르고 있었다. 봄, 가을엔 구 프로듀서가 여름, 겨울엔 친구가 기르는 식이었다. 또 불규칙적인 영화 일을 하며 개까지 키우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다시 그 친구와 의기투합해 오구를 한 달씩 번갈아 돌보기로 했다. 서촌에 오래 살던 그는 오구의 산책 코스인 안산도시공원과 친구 집이 가까운 연희동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만나는 건 운명 같다”고 말했다.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겠다고 선택한 게 아니라, 이들이 어느 순간 제 인생에 던져진 느낌이에요. 내칠 수도, 내쳐질 수 없는 존재인 거죠.”

인터뷰와 촬영이 진행된 서대문구 안산도시공원은 평소 오구의 산책 코스다. 임현동 기자.

인터뷰와 촬영이 진행된 서대문구 안산도시공원은 평소 오구의 산책 코스다. 임현동 기자.

고양이만 키워 온 그에게 개는 낯설고 어려운 동물이었다. 구 프로듀서는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똥오줌을 아무데나 싸 놓았을 땐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도도하게 자기 영역을 지키는 냥이와 달리 오구는 그에게 1분 1초도 눈을 떼지 않고 쫓아다녔다. “하도 지쳐서 친구한테 ‘개는 자기 생활이 없어?’ 라고 말했는데, 친구가 이 얘길 트위터에 써 리트윗이 10만 번이나 됐대요(웃음).”
그래도 오구가 주는 기쁨은 남다르다. 호기심도, 애교도, 겁도 많은 오구는 그에게 기대어 잠들기 일쑤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 촬영장에서 산 오구는 사회화가 제법 잘 돼 사람이나 다른 개를 보고 짖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구는 촬영장에선 임 감독 옆에 딱 붙어 조용히 모니터를 지켰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 촬영 당시 오구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구정아]

'리틀 포레스트' 여름 촬영 당시 오구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구정아]

애견인 2년 차가 된 그가 말하는 개는 “사람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동물”이다. 하루 두 번 산책을 시키다 보면 다른 개와 보호자를 만나 자연스레 말을 건네게 돼서다. 그는 최근 달라지고 있는 애견 문화에 관해 “반려동물 에티켓 등 모든 책임은 주인이 져야한다”고 말했다. “키 40cm의 중대형 반려견의 입마개 의무화 법안 등은 동물에게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이죠. 입마개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개가 공격적 성향이 있다면 견주가 알아서 채워야 하죠.”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반려동물이 편하고 행복할 때 더없이 행복해지거든요. 목줄 없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등 작지만 세심한 대책이 바로 애견인이 바라는 복지입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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