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 'BIS비율 조작 의혹' 5장의 팩스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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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30일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에 있는 론스타코리아 사무소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서류 등을 카트에 실어 나오고 있다. 김형수 기자

30일 검찰의 론스타 한국지사 압수수색은 전례 없는 일이다. 외국계 펀드의 사무실과 임원들의 집을 동시에 압수수색한 것은 검찰이 론스타의 혐의를 상당 부분 포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 방향은 세 갈래다. 스타타워 매각 등을 통해 번 돈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부분, 불법 계약을 통해 해외 지사로 외화를 빼돌린 부분, 그리고 2003년 8월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불법 행위 여부 등이다. 대검 중앙수사부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탈세와 외화 도피 부분은 오늘자로 본격 수사가 착수된 것"이라며 "외환은행 헐값 매입사건은 현재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와 조율해 진행하되 반드시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 외환은행 매입 의혹=사실로 드러날 경우 가장 폭발력을 지닌 부분이다. 초점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느냐는 부분이다.

국회 재경위는 지난해 국정감사 이후 문서검증반 활동에서 의문점을 발견하고 이달 초 당시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2003년 당시 외환은행이 이사회에 보고한 자기자본비율(BIS비율) 연말 전망치는 10%였는데, 막상 금융감독원에는 6.16%로 보고됐다는 것이다. 론스타에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주기 위해 누군가 고의적으로 BIS비율을 낮추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 과정이 석연치 않고 여기에 론스타가 간여한 부분은 없었느냐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당시 외환은행이 금감원에 보냈다는 BIS 비율 전망치가 담긴 팩스 5장의 정체가 문제다. 당시 론스타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김&장 법률사무소에 이헌재 전 부총리와 전홍렬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이 근무했던 점도 주목된다.

론스타 측에서 매입을 주도했던 스티븐 리(38.이정환)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는 이미 해외로 달아난 상태고, 문제의 팩스 5장을 보낸 외환은행 허모 차장은 지병으로 지난해 사망했다. 그러나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스티븐 리 등 말고도 증언해 줄 ) 관계자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속도 내는 탈세 수사=검찰 수사가 가장 진척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스티븐 리 등 전직 임원 4명과 자회사 2개, 자산유동화전문회사(SPC) 14개사가 고발돼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10월 론스타에 대해 약 6개월간 세무조사를 벌여 1400억원대의 세금을 추징하면서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론스타 측은 이 중 147억5000만원은 스티븐 리의 개인 탈세라고 주장하며 세금을 냈다. 그러면서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국세심판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론스타가 조세피난처를 거쳐 론스타 임원의 해외 계좌에 회사 돈을 보낸 뒤 국내 SPC에 컨설팅 용역 등을 해준 것처럼 꾸며 장부상 손금(損金)이 발생토록 해 세금을 덜 내는 수법도 의심받고 있다. 상환받을 채권을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결손법인에 싸게 팔아 채권수입을 이 법인에 떠넘기는 수법으로 탈세하기도 했다.

◆ 외화 불법 반출=론스타 자회사인 허드슨어드바이저코리아와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가 용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론스타 임원이 설립한 해외 법인에 여섯 차례에 걸쳐 860만 달러의 용역비를 불법 지급했다는 혐의다. 금감위가 올 2월 허드슨코리아와 론스타코리아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및 재산 국외 도피 혐의 등 내용을 검찰에 통보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두 회사는 허위.가공 계약을 통해 론스타 임원이 설립한 해외 법인 등에 SPC 등의 자금을 불법으로 반출하는 수법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윤창희 기자<theplay@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2003년 상황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사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외환은행이 BIS 비율 8% 이하인 부실 은행이어야 론스타의 인수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외환은행이 이사회에 보고한 2003년 말 BIS 비율 전망치는 10%였다. 그런데 금감원에 문제의 팩스 5장이 왔다. 2003년 말 BIS 비율 전망치가 6.16%라는 내용이었다. 금감원은 이를 근거로 외환은행을 부실 은행으로 지정했고, 이에 따라 론스타의 인수 작업이 시작됐다.

◆ BIS 비율 = 은행의 건전성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자기자본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정식 명칭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다. BIS 비율이 낮으면 부실은행으로 지정된다. 현행법상 금융회사만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지만, 금융 구조 조정을 위해 BIS 비율이 낮은 부실 은행은 예외적으로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PEF)도 인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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