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힘 … 연봉 수백억원 받는 DJ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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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비디오 시대가 열릴 때 "이제 라디오는 갈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비디오 시대를 지나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지만 아직 라디오의 힘은 왕성하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벌어진 이민법 반대 규탄 집회에 무려 50만 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것도 라디오의 힘이었다.

이번에 LA 시위를 준비한 쪽이나 경찰 측이 예상한 인파는 2만 명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 인파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넘어섰다. 왜 그랬을까. LA타임스는 28일 이 의문에 대해 '라디오'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라디오 디스크자키(DJ)들의 호소를 듣고 히스패닉 출신이 대거 시위현장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DJ들은 시위 참여를 독려하면서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우린 미국을 사랑한다"며 감성에 호소했다. DJ들이 시위 계획에 동조하기 시작한 건 집회 열흘 전인 15일. 가톨릭을 비롯해 시위를 준비하는 측의 협조 요청에 20일 스페인어 방송국들의 핵심 DJ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위를 성공시키자고 다짐했다.

라 누에바(스페인어로 새롭다는 뜻) FM 방송의 DJ인 에디 소텔로는 "나 역시 1986년 자동차 트렁크에 몸을 숨기고 불법 입국을 하고 나서 10년 뒤에야 합법적 신분을 취득했다"며 "그런 내가 불법 체류자들의 목소리를 워싱턴에 전하는 건 보람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DJ의 힘'의 배경에는 라디오의 화려한 부활이 있다. 한때 TV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던 미국의 소규모 라디오 방송사들은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라디오 방송이 인종.계층.지역별로 갈수록 세분화되는 청취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적격이기 때문이다. 청취권이 좁고 상대적으로 소규모라는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바뀐 셈이다. 이익단체와 시민단체들도 앞다퉈 라디오 방송 운영에 나서고 있다.

라디오의 부활에는 디지털 기술도 일조했다. 특히 위성을 통해 깨끗한 음질과 다양한 채널을 공급할 수 있는 위성 라디오는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매달 수신료를 내는 유료 방송이지만 최근 미국 내 가입자가 900만 명을 넘어섰다. 거물급 진행자들도 속속 라디오로 몰려들고 있다. 거친 정치 풍자와 음담패설로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 하워드 스턴(52)은 2004년 위성 라디오 방송 '시리우스'와 5년간 5억 달러에 계약한 데 이어 올 초 2억2000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그러자 경쟁사인 'XM'은 올 2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를 진행자로 끌어들였다. 이 방송국은 지난해 말 '포크록의 대부' 밥 딜런을 DJ로 영입하기도 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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