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불온서적' 헌법소원 내자 징계·강제전역…대법 "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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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국방부의 불온서적 차단 지시에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을 징계하고 강제 전역시킨 것은 부당하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소송이 시작된 지 6년 2개월 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전직 군법무관 지모씨가 국방부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처분 등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군인은 군 조직의 특수성에 비춰 일반 국민보다 기본권이 더 제한될 수 있다"면서도 "상관의 지시 명령 복종 의무를 요구하며 재판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원리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책 읽을 자유를 제한하는 이 사건에서 지씨는 지시와 명령을 시정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이는 복종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사전 건의를 하지 않은 것을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고 재판청구권 행사가 군 기강을 저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고영한·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군인은 재판청구권 행사에 앞서 군 내부의 사전 절차를 거쳐야 하고 일체 복무 관련 집단행위를 하면 안 된다"며 "국방부 장관 지시에 불복할 목적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언론에 공표해 이는 징계사유가 인정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국방부 장관은 지난 2008년 7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도서 23권을 군에 보내는 운동을 추진한다는 정보를 듣고 이를 불온서적으로 정하고 부대 내 반입을 차단하는 조치를 각 군에 지시했다. 지정된 책은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노암 촘스키 교수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등이다.

당시 군법무관이었던 지씨 등은 같은 해 10월 이 같은 지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듬해 3월 육군참모총장은 "지시를 따르지 않을 의사로 헌법소원을 제기해 군의 지휘계통을 문란하게 하고 군기와 단결을 저해했다"며 파면 처분을 내렸다. 이후 지씨가 낸 징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2011년 복직했지만 육군참모총장은 다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처분했다. 이후 국방부 장관은 2012년 1월 지씨에게 강제 전역을 명령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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