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陶工' 후손들 고향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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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4백년은 긴 시간이지만 핏줄을 끊지는 못했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은 자손들에게 물레 돌리는 법을 가르치고 이름을 물려주며 바다 건너 혈육의 땅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도래인(渡來人)'이라는 편견을 딛고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한국계 도공의 후손들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30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2003 한.일 도예전-공생을 위하여'에 출품한 15대 심수관(44.沈壽官), 13대 이삼평(42.李參平), 12대 사카 고라이자에몬(54.坂 高麗左衡門), 13대 다카토리 하치잔(43.高取八山)은 "일본에 있을 때는 만나기 힘든 네 사람이 서울에 오니 뭉치게 됐다"고 기뻐했다.

한국과 일본 도예가 60여 명과 나란히 작품을 낸 4대 가문의 후예는 전시장을 둘러보며 "두 나라 현대 도예가 몇년새 크게 발전했다"고 입을 모았다.

마침 경기도 이천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도자 비엔날레'를 다녀온 참이라 자연스레 작품 품평회 자리가 됐다. "한국 도예는 이제 세계적 수준에 올라선 것 같다"고 심수관씨가 말문을 열자 이삼평씨는 "어떤 분야는 일본 것보다 더 우수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선보인 작품들은 몇 백년 세월을 거치며 각 가문이 지켜온 전통과 당대의 발전을 아우른 것.

사카는 "기본 기술과 가풍은 비슷하지만 더 나은 작품을 하려고 노력한다"며 "내 경우 도쿄예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기에 도자 표면에 그림을 그려넣는 응용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와세다대를 나와 이탈리아 국립미술도예학교에서 공부한 심수관씨는 "아마도 우리 집 도자기가 가장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며 "도자기에 자연의 일부를 포함시키려는 내 철학 때문에 도자기를 구워낸 뒤에 입체적인 나비 한 마리를 붙여 넣는 등의 파격을 꾀했다"고 설명했다.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교토시립예술대 도예과를 졸업한 다카토리는 "조각을 하고 싶었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도예 일을 잇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한참 침묵에 빠져있던 세 남자는 "능력이 없거나 원하지 않으면 굳이 시키지 않겠다"고 비슷한 답을 내놨다. 자식이 없는 사카는 "뜻이 있는 훌륭한 제자라면 기술을 전수하겠다"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johanal@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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