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는 목사' 해비타트 운동 엄상현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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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추석 연휴가 바짝 다가온 요즘 강원도 삼척시 갈천동에 있는 야트막한 야산에는 망치와 톱질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삼척 일대를 강타한 태풍 루사에 정든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가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주초 기자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정화조를 집어놓을 땅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입주민 가운데 한명인 김영자(64)씨는 "예정대로면 이번 추석에 새 집에서 차례를 올릴 수 있었으나 공사 일정상 한달 가량 늦어졌다"며 "지금까지도 기다렸는데 그 정도 참지 못하겠느냐"고 활짝 웃었다.

이번에 지어지는 집은 다섯 동, 스무 가구다. 가구당 실평수 16평 규모로, 2층 콘크리트 건물로 건설된다.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해비탯)가 땅값의 50%를 지원하고, 나머지 경비는 일반인의 성금과 자원봉사자의 땀방울로 충당한다. 삼척제일감리교회 엄상현(52) 목사가 해비탯 삼척지회 이사장을 맡아 지난 6월 20일 공사를 시작했다.

엄목사가 지난 3개월을 돌아봤다. "자원봉사자만 총 2천여명이 참여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거죠. 지난해 수해 때 전국의 성원이 몰려들었지만 그건 강릉 같은 대도시에 집중됐습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곳에 구호 물품 등이 원만하게 공급되지 못한 셈이죠. 이번 입주자들은 그런 행정의 공백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입니다."

집을 지어준다고 '공짜'로 주는 건 아니다. 입주민들은 가구당 5백시간 공사 현장에 직접 참여해야 하고, 또 집에 들어간 후에도 매달 13만원씩 13~15년, 총 1천7백만원을 내야 한다. 여기서 모인 돈은 다음번 사랑의 집짓기 토지 구입비에 들어간다. 성실하게 일하면서 자기 집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다.

김영자씨는 "기공식 3일 만에 현장에 나와 일손을 거들었다"며 "가족의 땀이 배인 만큼 새 집에 대한 애착도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총 5백시간의 규정을 다 채운 그는 요즘도 공사장에 나와 간단한 일을 돕고 있다. 참여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매달 지급해야 할 금액도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삼척 사랑의 집짓기는 외장 공사를 거의 마치고 실내 공사가 진행 중이다. 문짝 달기.도배하기.보일러 장착 등 앞으로도 3억~4억원 정도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엄목사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전에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라며 "집을 잃은 사람들이 새로운 안식처를 찾을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성원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집짓기 삼척지부는 앞으로도 계속 집짓기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엄목사는 "현재 조성 중인 단지 위쪽에도 새로운 단지를 만들 계획"이라며 이번 공사가 1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사의 체면을 무릅쓰고 삼척지부 연락처(033-575-1004)와 후원 계좌(우체국 200253-01-004438)를 일러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뷰 직후 강원도 원주시에서 열리는 감리교 세미나에 참석하러 가는 그의 가방 속에도 '수해 현장에 새 희망을…'이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랑의 실천 앞에서 '체면'은 잠시 접을 수 있는 모양이다.

삼척=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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