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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부채 요요’ 막게 사전 신용상담 의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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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개인회생 도중에 대부업체 4곳에서 2000만원을 빌렸습니다. 기존 개인회생을 폐지하고 추가로 대출받은 것까지 포함해 개인회생 재신청을 할 수 있을까요?”

김도읍 의원, 법 개정안 발의 #개인회생 반복해 신청 3만8873명 #지금은 법원이 서류만 보고 결정 #쉽게 빚 탕감받고 또 고금리 빚내 #절차 엄격히 해야 제도 악용 못해

개인회생 관련 온라인 카페, 인터넷포탈의 지식공유 서비스 등엔 이러한 문의 글이 하루에도 몇건씩 올라온다. 개인회생으로 채무를 일부 탕감받았지만, 변제 기간(5년)을 미처 채우기도 전에 또다시 고금리 빚을 진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개인회생 뒤에도 쉽게 빚내는 습관을 고치지 못해 생기는 ‘부채 요요현상’이다. <중앙일보 1월 31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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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빚 탕감 후 다시 빚에 빠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개인회생·파산을 신청자에 신용상담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은 21일 채무자 회생·파산 신청 시 채무조정의 절차와 계획, 채무관리 등에 관한 신용상담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금은 법원이 소득·재산 관련 서류만 보고 요건이 되는지를 판단해 개인회생·파산 인가를 결정한다. 채무자는 보통 법무사에게 10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주고 법적 절차를 맡기기만 하면 된다. 어떠한 교육·상담·컨설팅도 조건으로 따라붙지 않는다.

그 결과 쉽게 빚 부담을 덜어낸 뒤 또다시 고금리 빚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3~2017년)간 개인회생을 2회 이상 신청한 사람은 3만8873명에 달했다. 신청 횟수 2회인 사람이 3만804명, 3회 6481명, 4회 1238명, 5회 이상인 사람도 350명이나 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개인회생 인가를 한차례 이상 받았지만 추가로 빚을 지면서 기존 개인회생을 폐지하고 재신청한 경우로 추정된다.

이번에 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개인 채무자가 회생·파산을 신청하려면 채무조정절차·계획에 관해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신용상담을 반드시 받도록 법에 명시했다. 다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신청 전이 아니라 개인회생 절차 개시 결정 전까지 기간 안에 신용상담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미국을 포함한 상당수 선진국도 안이한 빚 면책을 막기 위해 사전 신용상담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개인파산 신청이 급증하며 도덕적 해이 문제가 일자, 2005년 연방도산법 일부를 개정해 개인파산 신청자의 사전 신용상담을 의무화했다. 국내에선 서울회생법원이 자체적으로 회생 또는 파산 인가를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집단교육을 하고는 있다. 다만 교육이 의무가 아닌 데다, 집단을 대상으로 한 일회성 교육에 그치다 보니 한계가 있다.

김도읍 의원은 “현행 제도는 단순히 현재의 빚 부담을 구제해주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 미래의 빚 재발을 막는 근본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없다”라며 “신용상담을 의무화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채무자가 또다시 빚을 지는 ‘부채 요요현상’에서 벗어나고, 도덕적 해이 문제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전 신용상담 의무화는 무분별한 회생·파산 신청을 막고 제도를 악용하는 채무자를 걸러내는 데 효과적”이라며 “다만 신용상담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다면 어느 수준으로 할지 등 운영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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