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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라운지] '한국 민화 사랑'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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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리아 스나이더 여사가 30여년간 틈틈이 모아온 한국 미술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8세기에 그린 이조 왕실의 사당도(祠堂圖)예요. 고종이 일제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후궁의 친정에 몰래 맡겨놨던 거죠.”

20여년간 한국 미술을 미국에 알리는 데 힘써온 리아 스나이더 전 주한 미국대사 부인. 그는 반년 전 입수했다는 사당도를 보여주며 몹시 흡족해 했다.

1980년대 초 한국화 전문 화상(畵商)으로 변신한 스나이더 여사를 28일 뉴욕 센트럴파크 부근 그의 아파트에서 만났다.

그는 "31일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아시아 아트 페어'에 출품할 한국 미술품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아파트의 6개 방은 모두 민화(民畵).도자기.섬유 예술품 등 1백여 점의 한국 작품으로 가득했다.

스나이더 여사가 한국 미술에 매료된 것은 73년부터였다. 그는 원래 미시간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런데 대사로 취임하는 남편을 따라 서울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한국 미술에 심취하게 됐다.

그를 한국미술의 세계로 인도해 준 안내자도 있었다. 미 하버드대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한국민화 연구에 몰두했던 고 조자룡 박사다. 조 박사는 당시 한국 전통 양식으로 짓기 시작한 미 대사관저 공사에 참여하면서 스나이더 전 대사 부부와 가까워졌다. 스나이더 여사는 "조 박사는 짬만 나면 나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한국민화를 소개해 줬다"고 회상했다.

한국의 미술에 눈을 뜬 그는 한국의 전통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전국의 사찰과 유적지 등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미술품, 특히 민화를 눈여겨봤다. 서울에 있을 땐 인사동과 청계천 곳곳을 훑었다. 그는 "70년대엔 인사동보다 청계천에 괜찮은 미술품이 더 많았다"며 "이런 사실은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를 것"이라고 웃었다.

스나이더 여사는 남편의 임기가 끝난 79년 6년간의 서울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한국미술과의 연은 끊기지 않았다. 뉴욕에 본부를 둔'아시아 소사이어티'가 한국 전통예술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한국 전통예술 특별전이 6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83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며 "이 전시회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한국 미술품 거래에 뛰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20년 넘게 관록이 쌓이면서 이젠 한국 미술품 전문 판매상으로 인정받게 됐다.

그는 "한국미술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적어도 1년에 두 번씩은 꼭 서울에 다녀왔다"고 털어놨다. 이런 노력 덕분에 현재 그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뉴어크 미술관과 영국의 대영박물관, 로열 앨버트 뮤지엄 등에 새로운 한국 작품을 소개해 주고 있다.

요즘 그는 민화 외에도 한국의 현대 도예와 섬유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특히 한국의 현대 도예는 미국에서도 그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전통 보자기도 그가 매우 아끼는 물건이다. "한국 작가 중에는 전원풍경 작가인 이대원 화백, 백자로 유명한 김익영씨, 섬유미술가 이신자씨 등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와 한국 생활을 함께 했던 스나이더 전 대사는 86년 세상을 떠났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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