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비스 비자금 두 종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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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장 속의 비자금 70억원=회계장부에 나타나지 않은 현금을 뜻하는 비자금은 분식회계를 통해 조성된다. 가장 고전적인 수법은 하청업체를 이용하는 방식인데, 글로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주은(61) 글로비스 사장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글로비스는 하청업체 Y사 명의의 가짜 매입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수법으로 22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이원회계법인 김영재 대표는 "하청업체는 기본적으로 발주업체에 코가 꿰여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짜 계산서 요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수출입을 많이 하는 기업은 해외 위장거래를 통해 회사 돈을 빼낼 수도 있다. 글로비스는 이 수법도 함께 썼다. 글로비스는 미국 S업체와 화물 운송 거래가 없는데도 실제 거래한 것처럼 돈을 송금하고 나중에 S사와 관련 있는 국내 업체로부터 돈을 대신 되돌려받는 '환치기'와 비슷한 수법으로 48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 또 다른 비자금 50억~60억원=검찰은 26일 글로비스 압수수색에서 재무팀 비밀금고에 있던 돈다발 50억~60억원을 발견했다. 대부분이 현금이고, 달러와 양도성 예금증서(CD)도 포함됐다. 왜 이런 거액의 현찰이 회사 금고에 있었을까. 일반 회사들도 어느 정도 현찰을 보유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액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중견 회계법인의 대표는 "기업에 가보면 월말 자금수요가 몰릴 때 경리부서에 수천만원의 현찰이 쌓여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보통은 은행에 현금을 예금하지 회사 금고에 넣어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요즘엔 급여도 대부분 계좌로 자동 이체되고 기업 구매자금카드도 확대되고 있어 현금 결제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다른 회계법인의 임원은 "은행에 보관할 수 있는 CD를 직접 보유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며 "요즘 수익률도 낮은데 왜 CD를 그냥 갖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글로비스의 경우 기업의 통상적인 자금운영과는 상당히 다르게 자금을 운용했다는 얘기다. 검찰은 글로비스 금고에서 발견된 현금 뭉치가 불법 대선자금과 같은 정.관계 로비 등 비정상적 거래를 목적으로 한 비자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글로비스에서 발견된 돈에 대해 이주은 사장은 28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금고에서 나온 돈이 구속 영장에 기재된 돈의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금고 속의 돈은 이씨의 구속영장에 기재된 비자금 70억원과는 다른 것이라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비자금이라는 설명이다. 채 기획관은 "이미 쓴 돈이 금고에 남아 있을 리 없다"고 말해 70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음을 시사했다. 현대차는 2002년 11월 현대캐피탈 사옥 지하에 보관하던 현금 100억원을 트럭에 옮겨 실어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한나라당 측에 '차떼기'로 전달한 사실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다.

김승현.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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