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40번 버스기사 “죽어도 악플 남는 게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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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이대론 안 된다<상> 

240번 버스가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건대역 버스정류장에 멈춰섰다. 김상선 기자

240번 버스가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건대역 버스정류장에 멈춰섰다. 김상선 기자

“제가 죽어도 악플은 남는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습니다.”

작년 “아이 혼자 내리게 했다” 악플 #삽시간에 “살인미수·아동학대” 도배 #이틀 뒤 누명 벗었지만 못 씻을 상처 #“온라인 시계 좀 천천히 흘렀으면 #댓글 쓰기 전 3일만 지켜봅시다”

지난해 9월 11일의 악몽은 아직도 ‘240번 버스기사’ 김모(61)씨를 괴롭힌다. 그는 ‘버스를 세워달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무시한 채 아이를 혼자 내리게 했다’는 잘못된 인터넷 글로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겪었다. 사건 이틀 뒤에 누명을 벗었지만 그동안 온라인을 뒤덮은 악플로 그는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김씨의 지옥은 지난해 9월 11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광진구의 버스정류장에서 시작됐다. 김씨는 건대역 정류장을 출발하고 10초가량 지나 ‘아저씨’ ‘아저씨’ 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승객 안전을 위해 이미 길 한가운데로 접어든 버스를 멈출 순 없었다. 이 여성은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는 “승객이 단순히 정류장을 놓쳐 내려달라고 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무심히 일을 계속하던 그에게 한 시간 뒤 동료 기사들이 “인터넷에 240번 버스기사를 비판하는 글이 떠있다”고 알렸다. 김씨는 이때 아이가 건대역에서 혼자 내린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잘못한 게 없는 김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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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후 9시30분쯤 인터넷을 들여다본 김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잘못된 목격담이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거쳐 ‘가짜 뉴스’로 변질돼 있었다. 그 아래엔 ‘미친 기사 양반’ ‘살인미수’ ‘아동학대’ ‘다시는 운전대를 못 잡게 해야 한다’ 같은 악플이 도배돼 있었다. 33년간 버스 운전을 한 성실한 가장인 그가 ‘흉악범’이 돼 버렸다.

악플은 가족까지 괴롭혔다. 사건 발생 이튿날인 12일 오후 2시쯤 그의 둘째 딸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딸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울면서 키보드를 쳤다. 그런데 이 글에도 ‘진짜 딸이 맞느냐?’ ‘글이 의심스럽다’는 악플이 달렸다. 그와 가족들은 사흘 동안 밥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세상이 무서웠다. 병원에선 그에게 “6개월간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억울함은 13일 오후에야 풀렸다. 파문이 커지자 서울시가 조사에 나서 ‘김씨의 위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인터넷의 분위기는 반전됐다. 그를 옹호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미 아물지 않는 상처가 깊이 파인 뒤였다. 그는 요즘도 가끔 15층 아파트 집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이 일을 겪고 보니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유명인들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갑니다. 세상 풍파를 헤쳐 온 예순이 넘은 나도 자살 충동을 느꼈는데, 젊은이들은 오죽하겠어요.”

그를 버티게 하는 건 가족의 힘이다. 그는 “부인과 두 딸이 매일 몇 번씩 내게 전화를 걸어 용기를 북돋아 준다. 내가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살피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금씩 희망을 꿈꾸게도 됐다.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이미 결혼 날짜를 잡아둔 큰딸은 결혼했고, 둘째딸은 최근 원하는 대학에 편입학했다.

김씨는 “다시는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면서 “댓글을 쓰기 전에 딱 3일만 지켜보고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속도’보다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으냐는 반문과 함께였다. “‘온라인 시계’는 지금보다는 조금 천천히 가면 좋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도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그의 간절한 소망이다.

◆특별취재팀=김민상·임선영·하선영·김준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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