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해외로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무섭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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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호 34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당시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노동 관련 법안이) 노동계 편향으로 가면 기업도 스트라이크(파업) 할 수 있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그는 또 “(기업인의 파업은) 길거리에서 하는 게 아니라 조용하게 사업을 접고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라며 “기업인의 ‘말 없는’ 파업 때문에 기업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고, 그래서 실업자가 많은 것”이라고 했다. 비정규직법 등 기업 부담을 늘리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던 당시 정치권을 향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섬유업체인 경방과 전방이 국내 공장의 폐쇄나 해외 이전을 결정했다. 올 들어선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한국 철수 가능성을 흘리며 정부·노조와 샅바 싸움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요란하게’ 사라지는 일자리만 있는 게 아니다. 이수영 전 경총 회장의 말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무서운 법이다. 어제 본지 보도에 따르면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 속하는 국내 대기업 7곳의 2010~2016년 고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 기간 국내 직원 수는 8.5%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해외 직원은 70.5%나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이 기간에 국내 직원 수는 소폭 줄이고 해외 일자리는 10만 개 이상 늘렸다.

세계는 지금 일자리 전쟁 중이다.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풀어 일자리의 보고(寶庫)인 기업을 유치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본국으로 돌아오는 미국 기업에 세금을 깎아줬을 뿐 아니라 외국기업의 미국 생산을 늘리기 위해 무차별 통상 압박을 하고 협박성 트윗까지 날린다. 정부가 엊그제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놨지만, 재정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해외로 조용히 사라지는 일자리를 최소화하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정공법밖에 없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은 이미 오래전에 나와 있는데, 정부는 재정을 쏟아부으며 오답만 쓰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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