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와 스톱워치 &김성호(중앙일보출판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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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로마를 방문한 사람은 대개 교황이 사는 바티칸궁을 찾게 된다. 건물전체가 박물관이자 미술관인 이곳을 이리구불 저리구불 돌다보면 마지막에 시스틴 성당에 이른다. 웃고 떠들던 사람들도 1백50평 남짓의 이 기도실에 들어서면 숨을 죽이고 경건한 눈으로 위를 쳐다보게 된다. 거기엔「미켈란젤로」의 천장화『천지창조』가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1508년부터 4년동안 시스틴 성당의 내부벽화·천장화를 그렸다. 천장 중앙부분에 그린『아담의 창조』에서부터 제단화『최후의 심판』까지 구약·신약성경의 내용을 그 나름대로 해석해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아담의 창조』는 힘있게 몸을 날리는 조물주가 풀밭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팔을 내민「아담」에게 손을 뻗치고 있는데 그 손가락이 닿을락 말락하다. 후세의 화가나 삽화가들은 인간이 조물주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얻는 이 부분을 즐겨 그림의 소재로 삼고있다.
지금 이『천지창조』가 대수술을 받고있다. 5백년 가까이 묵은 때와 먼지와 검댕을 벗겨내는 작업이다.
1980년에 시작된 이 복원작업은 먼저 벽부터 시작해 지금은『아담의 창조』부분에 이르렀다. 20m 높이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컴퓨터·현미경·전화기등을 갖춘 받침대 작업장에 이르게 된다. 복원작업은 때를 녹이는 특수 화학용액을 그림에 바르고 스펀지로 닦아내 원색을 살리는 작업이다. 덧칠은 하지 않는다.
인류 최고의 걸작품을 재생시키는 작업이다. 그 신중한 작업태도는 우리에게 참고가 될만하다. 때를 벗겨 내는 용액을 바른후 스톱워치로 정확히 3분을 잰뒤 스펀지로 닦아 낸다. 실험결과 3분을 초과하지 않아야 원화의 물감이 손상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이 복원작업에는 실수는 있을수 없다』는 것이 작업에 임하는 전문가들의 각오다. 작업 단계마다 검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1992년의 완료목표는 1∼2년 더 연장될것 같다고 최근 외지는 전한다.
7년전「레오나르도·다·빈치」의『최후의 만찬』이 새모습을 보인것처럼 이번에는「미켈란젤로」의 신비스런 솜씨를 새롭게 볼날도 멀지 않은것 같다.
고미술품의 보존·복원은 어느 나라나 큰 관심사다. 민족문화의 유산이자 세계에 자랑할만한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3년전 국내 유일의 고려 벽화인 영주 정석사 조사당의 불화가 복원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때를 닦아 원화를 살려낸 것이 아니고 모사·재현한 것이다.
벽화를 그린 흙벽이 6백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내릴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몇몇 현대화가들의 그림이 복원된 경우가 있었는데 자외선으로 검사해 손댈부분을 찾아내고 세척한후 덧칠을 한것이다. 이 분야에선 외국의 하이테크를 배워둘 필요가 있다.
퇴락한 산사에는 아직도 복원의 손길을 가다리고 있는 고미술품이 많고 그대로 방치하면 영원히 사라질 작품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보1호인 남대문과 보물1호인 동대문의 세척·단청작업이 한창이다. 받침대를 쌓고 헝겊으로 가려 그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작업기간이 5월과 6월 두달동안이라는 것부터가 우선 마음에 걸린다. 문화재 새단장에 눈을 뜬 것은 좋으나 남들은 12∼13년의 세월을 둔다는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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