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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서 온 편지|최철주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설국으로 불리는 북해도 오호츠크연해에 아바시리(망주)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지금 60대에 가까운 한국사랍들에게도 매우 낯익은 마울이다. 그러나 아바시리는 정이 끌리는 고장이라기보다 공포를 주는 악명의 마을로 기억되고 있다.
거기에는 명치시대부터 무시무시하기로 소문난 거대한 감옥이 자리잡고 있으며 일제때 특고 (특별고등계) 에 쫓기던 한국인들이 이곳으로 유배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연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아바시리 감옥에서 어찌나 혹독한 형벌이 가해졌던지 이곳에 갇혀 있던 숱한 죄수들이 옥중에서 파리목숨처럼 죽어갔으며 우는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형무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감옥은 아침 8시가 되면 깃발을 든 안내인을 따라 줄지어 들어가는 일단의 관광객으로 붐빈다.
다섯 손가락 모양을 한 방사상 감옥으로 들어선 관광객들은 옛날 중죄인들이 갇혀 있던 감방의 2중 철창과 족쇄및 각종 형구를 보고 섬뜩해 하거나 비명을 지른다.
과거 죄수들의 탈옥 경로를 설명하는 모형인물들의 배치를 보고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더우기 역사 현장감을 높여주는 관광코스엔「체험입옥」이라는게 있다. 자신이 직접 감옥에 갇혀 옛날 죄수의 심경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아바시리 감옥은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인물로 버림받은 죄수들의 유배지라고 해서 번지조차 부여되지 않은「번외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악명 높은 이 감옥의 문화사적 가치가 높아져 매년 80여만명의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비록 감옥이긴 하나 있는 그대로 보관하고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사회교육현장으로 성공한 셈이다.
아바시리 감옥은 1912년(명치 45년)국사범이나 극악무도한 죄수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북해도는 거의 미개척지였다.
죄수들은 아바시리 일대에 군용도로를 만드는데 혹사당했으며 도로·하천·탄광 개척 작업에 무자비하게 동원된 나머지 많을 때는 한해에 무려 9백40여명이 참살당하거나 기아로 숨졌다.
무인지경의 이곳에 감옥을 세우기로한 사람은 나중에 한국을 병탄한「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당시 내무경)였다.
그는 북해도의 광대한 지역에 중죄인들을 유배시켜 얼어붙은 땅을 개간토록하고 형기가 끝나면 그곳에 영주시킬 속셈이었다. 이 계획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항하기 위한 북방방위의 일환이었다.
이런 전력때문에 아바시리감옥은 행형사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북해도 개척사상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감옥의 건축양식이 최초의 서구식 목조 감방이어서 보존의 의미가 더욱 크다.
이 감옥은 1985년까지 73년동안 사용되다가 그해 5월 아바시리감옥보존재단이 발족해 이를 박물관으로 바꿔 관광 명소로 개발했다. 당초에 이 재단은「감옥을 명치시대의 유산으로 전시하면서 그동안 수집한 각종 자료를 보존, 공개하고 사실및 행형사상의 계몽을 위해 교육문화사업을 펼칠 것」을 약속했다.
그래서 행형자료관에는「죄수들의 피가 눈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지옥이 되었던」아바시리 감옥에서 죄수들의 가혹한 노동장면이 실물크기의 마네킹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들의 손과 발목에 채워졌던 각종 쇠사슬과 포승·수갑등이 모두 진열되어 있다.
2중 철창 사이로 열쇠가 더덕더덕 달린「단절의 벽」에서「체험입옥」을 시험해보는 관광객들의 호기심도 대단하다. 포악한 죄수들을 주야 5일간 암실에 가두어 혼을 빼는「징벌방」에도 현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바시리 감옥은 인본주의를 하나의 큰 가치로 삼고 있는 오늘의 일본인들에게 잘못된 정치체제 아래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느 정도까지 말살되며 인간이 도구화될수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들이 이를 체험적으로 느낄수 있게 된 것은 과거는 그것이 영광스런 것이건, 치욕적인 것이건, 혹은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것이건 후손들에겐 모두 교육적 가치가 있다는 정책 결정자들의 역사의식의 덕분인지도 모른다.
아바시리 감옥을 둘러보며 독립문에 밀려난 영은문, 또다시 고가도로에 밀린 독립문등 숱한 역사·문화적 유산들이 근대화나「부끄러운 과거」라는 이유때문에 사라져야 했던 우리의 현실에 서글픔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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