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TK, 미투 익명창구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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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5일 대구 수성구 전교조 지부에서의 미투 강연. [백경서 기자]

지난 5일 대구 수성구 전교조 지부에서의 미투 강연. [백경서 기자]

“최근 이어지는 미투 운동에서는 대부분 실명을 밝히고 있지만 대구·경북에선 피해자들이 당당히 나서길 어려워 하는 분위기입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탓입니다.”

지역 여성단체들 성폭력 해법 제시 #SNS 우체통, 홍벽서 거리 등 눈길 #피해자 고발 상담·법률 지원키로 #8일 ‘여성의 날’ 맞아 거리행진도

여성의 날(8일)을 앞둔 지난 5일 오후 7시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카페. 남은주(45·여) 대구 여성회 대표가 미투 운동에 대한 지역 특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피해 사실과 가해자를 알릴 수 있는 창구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SNS 우체통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대구여성회 등 14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회원 30여 명이 ‘#MeToo, #WithYou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 자리에서다.

이날 토론회는 여성의 날을 맞아 지역의 여성단체들이 미투 운동 속에 지역적 한계점을 짚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안이정선(63·여)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대구·경북에서 생각외로 미투 운동이 활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보수적인 환경에서 미투를 호소할 곳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 여성단체들이 나서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특별위원회를 조성해 피해자 대신 가해자에게 가해 사실을 적은 붉은 편지를 보내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게 하자”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가장 눈길을 끈 건 모두의 의견을 모은 SNS 우체통 만들기와 한 대학생의 아이디어인 홍벽서 거리 조성이다. 우선 SNS 우체통은 페이스북 등 접근이 쉬운 디지털에서 익명으로라도 말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익명성을 앞세워 보수적인 성향을 극복해보자는 취지다.

홍벽서 거리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가져온 제안이다. 조선시대 성균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배우 유아인은 부패한 세상에 대해 비판한 글을 붉은색 벽서(壁書)에 적어 세상에 알린다. 대구 동성로 등 많은 사람이 다니는 거리 벽에 성폭력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다. 여성단체들은 이날 특별위원회를 별도로 꾸려 지역 피해자들을 돕기로 뜻을 모았다.

8일 대구 동성로에서 ‘세계여성의 날 기념 대구여성대회’가 열렸다. [뉴시스]

8일 대구 동성로에서 ‘세계여성의 날 기념 대구여성대회’가 열렸다. [뉴시스]

강혜숙(53·여)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미투는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지역에서는 여전히 피해자가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분위기다”며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용기를 낸 지역 피해자들을 위해 여성단체에서 특별위원회를 조성해 상담과 법률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 특별위원회는 대구시·대구시교육청·대구지방고용노동청, 8개 구·군청·구·군의회 등 지역 공공기관에 성 평등 교육과 미투 대책을 촉구할 방침이다. 오는 15일 오후 7시 대구 중구에 있는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직장 여성, 성매매 여성 등을 한데 모아 미투 관련 공개 토론회도 열 계획이다.

강 대표는 “지금 각계에서 이어지는 미투 고발이 단순히 가해자의 사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미투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8일 오후 3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에서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를 주제로 제25회 대구여성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진행된 행사에서 여성단체들은 성평등 실현에 힘쓴 성평등 디딤돌을 발표하고 반대 의미인 걸림돌도 발표했다. 또 30분간 행진을 하며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부조리함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대구 성폭력 관련 상담소는 ①대구 여성의 전화(053-471-6484) ②대구 해바라기 센터(053-556-8117) ③대구 여성 인권센터 힘내(053-422-8297) 등이 있다.

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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