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괘념치 말거라” … 이 정도는 괜찮다는 권력자 착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 [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 [연합뉴스]

안희정(사진)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에 대한 폭로가 나온 이후 ‘정무비서 김지은씨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지난 8개월 동안 네 차례에 걸쳐 김씨를 성폭행했다. 안 전 지사는 텔레그램을 통해 김씨에게 ‘미안’ ‘내가 스스로 감내해야 할 문제를 괜히 이야기했다’ ‘괘념치 말거라’ 같은 글을 남겼으나 김씨의 폭로 직후 잠적했다. 심리전문가들은 안 전 지사의 일련의 행동에서 다양한 감정 변화가 읽힌다고 8일 분석했다.

전문가 3인, 안희정 심리 분석 #위협 내 밑 못 벗어난다 속내 깔려 #희석 피해자 힘든 줄 몰랐다 왜곡 #공황 충격 커 입장 번복 잇따라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장은 “‘나는 이 정도 범죄는 저질러도 되겠지’라는 착각을 권력자들이 많이 한다”며 “자신의 힘으로 (피해자에게) 시혜를 베풀면 그 피해가 상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안 전 지사는 자신이 권력을 쥔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 정도(성폭행)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명호(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보통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에게 좋은 인성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상에서 보면 성윤리가 취약한 경우가 많다”며 “안 전 지사의 행동은 ‘과다성욕(Hypersexuality)’으로 보인다. 성욕이 치솟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고 말했다. 그는 “성행위에 대한 반성이 유치원생 수준일 수 있다. 성적 습벽도 보인다”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안 전 지사의 텔레그램 내용은 자신의 범죄를 ‘희석’시키려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임 교수는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피해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동영상을 보여 주면 다들 ‘저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고 답한다”며 “이런 차원에서 ‘괘념치 말거라’(마음에 두고 걱정하지 마라)는 내용은 몹시 거슬린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 스스로 기억을 왜곡해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답이 없는데도 글을 계속 쓰는 모습에서 불안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심리분석가가 본 ‘안희정은 왜’

심리분석가가 본 ‘안희정은 왜’

김씨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지난달 25일 김씨를 만나 ‘미투 운동’에 대해 얘기하다가 사과한 후 다시 성폭행했다. 오 교수는 “미투 운동과 자신의 범죄를 구분 지으려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배 학과장은 “‘미투 운동이 일어도 나는 끄떡없다. 너는 내 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보여 준 행동이다”며 “피해자의 심리적 시야를 좁게 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일종의 위협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김씨는 “미투 언급을 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한 상태에서 또다시 그랬다고 하는 게 저한테는, 지사한테 벗어날 수가 없겠구나, 나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폭행 폭로가 있던 지난 5일 안 전 지사 측은 ‘합의된 성관계’였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다음 날 이를 번복했다. 오 교수는 “갑작스러운 공황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실언했다가 번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안 전 지사는 성취욕이 강했던 만큼 폭로를 접하고 심각한 공황에 빠졌을 것이고 포기하는 심정으로 글을 올린 듯싶다”고 해석했다. 배 학과장은 “피해자를 잘 세뇌시켰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인격체가 아닌 꼭두각시라고 봤을 텐데 폭로가 나왔으니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폭행 가해가 폭로된 후엔 외부와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임 교수는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면 동굴(피난처)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