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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들어 쏴, 추의 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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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오른 다리를 살짝 들었다 내렸을 뿐인데, 잘 맞는다.

빅리그 13년 만에 폼 바꾼 추신수 #오른발 살짝 들었다 내리며 타격 #시범경기 4할대 후반 불방망이 #높고 멀리 날려 땅볼 줄이고 장타 #터너 키운 래타 코치 찾아가 익혀 #전문가 “안정적 균형 유지가 열쇠”

메이저리그 데뷔 13년 만에 ‘레그킥’을 장착한 추신수(36·텍사스 레인저스)가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추신수는 7일 미국 애리조나주 메사의 호호캄 스타디움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 3타수 3안타·2타점을 기록했다. 시범경기 타율은 0.462(13타수 6안타). 2014년 텍사스 이적 후 가장 순조로운 출발이다.

추신수는 지난 시즌 텍사스에서 14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1, 22홈런·78타점을 기록했다. 한 시즌 개인 최다홈런 타이(2010·15년) 기록을 세웠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지역 매체들은 “텍사스의 체질 개선을 위해 추신수를 트레이드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2000만 달러(약 214억원)에 달하는 추신수의 연봉을 생각하면, 활약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존 대니얼스 텍사스 단장은 “추신수를 트레이드 하면 자금 운용에 여유가 생겨 대형 선발 투수를 영입할 수 있지만 공격력에서는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트레이드설을 일축했다.

추신수가 타격 폼을 살짝 바꿨다. 타격 준비 자세에서 오른 다리를 살짝 들어올려 타이밍을 잡고 있다. 왼쪽은 지난해 추신수의 타격 자세. 양 발을 지면에 붙인 채 공을 바라보고 있다. [AFP=뉴스1, OSEN]

추신수가 타격 폼을 살짝 바꿨다. 타격 준비 자세에서 오른 다리를 살짝 들어올려 타이밍을 잡고 있다. 왼쪽은 지난해 추신수의 타격 자세. 양 발을 지면에 붙인 채 공을 바라보고 있다. [AFP=뉴스1, OSEN]

이런 상황에서 추신수도 변화가 필요했다. 그동안 추신수는 타격 준비 동작에서 오른발을 땅에 살짝 찍는 토-탭(toe tap) 자세를 유지했다. 체중 이동을 최소화하고 몸통의 회전에 의존하는 타격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겨울 ‘레그킥 전도사’라 불리는 더그 래타 타격 인스트럭터를 직접 찾아가 새로운 타격 폼을 익힌 뒤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실험하고 있다. 래타 코치는 LA 다저스의 강타자 저스틴 터너(34)를 키운 지도자다. 2013시즌 이후 뉴욕 메츠에서 방출됐던 터너는 래타 코치의 도움으로 다저스에서 잠재력을 꽃피웠다. 레그킥을 이용한 체중 이동과 어퍼스윙으로 ‘공을 강하게 멀리 치는 것’이 래타 코치 타격 이론의 핵심이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선 홈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구단과 선수들은 타구의 발사각도를 높여 홈런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래서 래타 코치의 이론은 최신 트렌드를 일컫는 ‘플라이볼 혁명’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격 이론가인 김용달 KBO 육성위원은 “처음에 추신수가 레그킥을 시도한다고 들었을 때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추신수의 레그킥은 힘을 모으는 동작이 아닌 타이밍을 잡는 동작으로 파악된다.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추신수가 레그킥에 도전한 건 홈런보다는 상대의 집요한 수비시프트(타자의 성향을 파악해 타구 방향을 예측하는 수비)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당겨치기를 주로 하는 추신수는 통산 땅볼 타구 비율이 47.5%(팬그래프닷컴 기준)나 된다. 땅볼 타구가 내야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수비시프트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추신수는 아예 수비시프트로 잡을 수 없는 뜬공 타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리를 들게 된 것이다. 김용달 위원은 “그동안 추신수는 땅볼 타구 비율이 높고, 몸쪽 공에 약점을 보였다. 타격 준비 동작에서 몸의 반응 속도가 늦었기 때문이었다. 레그킥을 하면 타격 타이밍을 빠르게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추신수의 레그킥은 다리를 높게 들어올리는 일명 ‘외다리 타법’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추신수는 오른 다리를 지면에서 살짝 들어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취한다. 보통 체구가 작은 아시아 선수들은 다리를 높게 들어 뒷 다리에 힘을 모았다가 임팩트 순간 체중을 앞으로 실어 타구에 힘을 전달했다. 추가 흔들리는 것처럼 뒷다리에 몰렸던 체중이 앞다리로 이동하면서 힘이 발생하는 원리다. 김영관 전남대 교수(운동역학)는 “이용규(한화)나 이승엽(은퇴)의 외다리 타법은 힘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동작이다. 한 번에 폭발적인 힘을 실을 수 있지만 체중 이동이 과도하면 오히려 에너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추신수는 다리를 들지만 체중 이동을 최소화한, 안정적인 상태에서 타격을 준비한다. 조시 도널드슨(토론토)이나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등과 비슷하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트렌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추신수의 타격 자세는 강속구 대처에도 유리하다. 김용달 위원은 “최근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구속이 빨라졌다. 추신수의 경우 스탠스 자세부터 몸의 균형을 양 다리에 50대50으로 둔 상태에서 앞쪽으로 체중 이동을 한다. 쓸데없는 동작을 줄이면서 타격 타이밍을 앞쪽에서 잡아 빠른 볼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시범경기인데다, 6경기 밖에 치르지 않아 속단은 이르다. 추신수도 “(새 폼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김영관 교수는 “추신수의 레그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안정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하체 근육, 코어 근육, 복근 등이 잘 받쳐줘야 한다”며 “밸런스를 잡지 못하는 선수에게 레그킥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용달 위원은 “반복 훈련을 통해 확실히 자기 폼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베테랑 추신수가 도전정신을 갖고 변화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추신수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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